| 한글 | 포운 응원 |
|---|---|
| 한자 | 浦雲應元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흥사, 도갑사, 예암 광준, 은암 정호 |
| 시대 | 조선후기 |
| 출생 | 1807년 |
| 입적 | 1867년 |
| 호 | 포운(浦雲) |
| 주요주석처 | 대흥사(大興寺), 도갑사(道岬寺) |
조선 후기 은암 정호의 법맥을 잇고 대흥사의 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
19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은암 정호(銀巖正浩, ?~1834)의 법맥을 잇고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의 총섭(摠攝) 등을 역임하였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응원(應元), 호는 포운(浦雲)이다. 속성은 김(金)씨로, 1807년(순조 7)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서 해남으로 갔다가 우연히 두륜산(頭輪山)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 들어가 은암 정호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연하 간순(緣何侃淳)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정호의 법통을 이었다. 곧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의 15세 법손이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9세 법손이며, 의암 창인(義庵暢印)의 손제자이다.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학문을 익히다가 대둔사로 돌아와 총섭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수행에 전념하였다. 1866년(고종 3) 가을에 움막을 짓고 홀로 앉아 커다란 서원(誓願)을 세우고 자기 마음 안[自性]의 부처를 직시하는 선법을 수행하였으며, 1867년(고종 4) 봄에는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 상견성암(上見性庵)에 머물며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이후 계룡산(鷄龍山) 동악(東岳)에서 하안거(夏安居)를 지내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것이 곧 마음이요, 곧 부처라네(非心非佛, 卽心卽佛)”라는 게송을 남기고, 붓을 던지고 누워서 평온한 모습으로 입적하였다. 이때가 세속 나이 61세, 법랍(法臘) 45년이었다.
1867년 5월 29일에 다비식을 하는데, 상서로운 광명이 하늘에 떠올랐으며 붉은 노을이 골짜기를 감쌌다고 한다. 법을 받은 제자로는 예암 광준(禮庵廣俊, 1834~1894)이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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