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취여 삼우 |
|---|---|
| 한자 | 醉如三愚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백련사, 대둔사, 대흥사, 화악 문신, 해운 경열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622년 |
| 입적 | 1684년 |
| 호 | 취여(醉如) |
| 주요주석처 | 백련사(白蓮寺), 대흥사(大興寺) |
대흥사 13대종사이자 백련사 조선 8국사로 해운 경열의 법맥을 이은 승려
17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전라남도 강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에서 출가하여 해운 경열(海運敬悅)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해남 두륜산(頭輪山)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 13대종사(宗師) 중 한 명이자, 만덕사 조선 8대사(大師) 중 한 명으로 추대받고 있다.
종사의 법명은 삼우(三愚), 호는 취여(醉如)이다. 속성은 정(鄭)씨로 1622년(광해군 14)에 전라남도 강진군 보암방(寶岩坊) 구정자(九亭子)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만덕산 백련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여러 선사를 두루 참알(參謁)하고 불경을 널리 섭렵하였다.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의 제자인 해운 경열(海運敬悅)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니, 계보는 소요 태능-해운 경열-취여 삼우로 이어진다. ‘취여’는 그의 얼굴이 붉고 윤기가 흘러 ‘술에 취한 듯한 사람[醉如子]’ 같다고 하여 경열이 장난삼아 붙여 준 호다.
종사는 특히 담론(談論)을 잘하여 대둔사 상원루(上院樓)에서 화엄 종지(華嚴宗旨)를 연설할 때 수백 명이 강론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 한 승려가 밭을 가는 기구를 지고 누각 아래에서 쉬다가 한두 구절을 엿듣고서 그 자리에서 단박에 깨달아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고 참회하며 종사에게 불법(佛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종사가 그에게 의발(衣鉢)을 전해 주고 자신의 법맥을 잇게 하였다. 이 승려가 화악 문신(華岳文信, 1629~1707)이다.
1684년(숙종 10) 6월 5일에 세속 나이 63세로 입적하였다. 비명은 다음과 같다. “세상 사람 다 취하니 스님도 취했구나/ 취한 듯 취한 게 아니요 어리석은 듯 어리석지 않네// 용의 굴에 맑은 기풍 여유가 있고/ 눈물 흘린 법석(法席)은 아호(鵝湖) 스님 같아라// 방아 찧다 발우 받은 이는 노(盧) 행자인데/ 취한 술 깨어나니 구름 수레 아득하네// 옥 무늬 찬란한 돌 거북 받침 화려하고/ 비명을 청한 사람 법손(法孫)인 기어(旗魚)라네.” 탑명(塔銘)은 도승지(都承旨) 한치응(韓致應, 1760~1824)이 지었고, 제자는 화악 문신 등 10여 명이 있다. 백련사와 대둔사에 그의 영정이 있었다고 한다.
종사의 행적은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대둔사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화엄을 강의하며 후학들을 양성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만덕사지(萬德寺志)』에서는 그를 조선 후기 백련사(만덕사)를 중흥시킨 인물로 평가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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