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지증국사 도헌 |
|---|---|
| 한자 | 智證國師 道憲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희양산문, 긍양, 봉암사 |
| 시대 | 통일신라 |
| 출생 | 824년 |
| 입적 | 882년 |
| 시호 | 지증(智證) |
| 탑소재지 | 문경 봉암사(鳳巖寺) |
| 비소재지 | 문경 봉암사(鳳巖寺) |
신라 하대 북종선의 법맥을 잇고 희양산문을 개창한 승려
신라하대인 9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북종선(北宗禪) 및 혜은(慧隱)의 법맥을 잇고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에서 9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개창하였다.
국사의 이름은 도헌(道憲), 자(字)는 지선(智詵)이다. 속성은 김(金)씨로 아버지의 이름은 찬괴(贊瓌), 어머니는 이(伊) 씨이며, 824년(헌덕왕 16)에 경주에서 태어났다. 풍채가 뛰어나고 말소리가 우렁차며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여러 기이한 일화가 있었다고 전한다.
9세에 아버지를 여읜 후에 한 승려의 말을 듣고서 깨달음을 얻어 어머니에게 출가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자 몰래 경상북도 영풍군 부석사(浮石寺)로 도망쳐 가서 출가하였다. 부석사 범체(梵體)에게 화엄(華嚴)을 배우고, 17세에 경의(瓊儀)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혜은에게 선(禪)을 배우고 그의 법맥을 이으니, 계보는 법랑(法朗)―신행(神行, 704~779)―준범(遵範)―혜은―도헌으로 이어진다. 준범과 혜은이 어떠한 인물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행은 당(唐)에서 북종선을 배워 온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이 계보는 북종선의 맥을 이은 계보로 추정된다.
선승(禪僧)으로서 명성이 높아지자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이 경주로 초청하고자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864년(경문왕 4)에 경문왕의 누이이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단의장옹주(端儀長翁主)의 청으로 강원도 원주 현계산(玄溪山) 안락사(安樂寺: 현 거돈사지로 추정)에 주석하였다. 이후 심충(沈忠)이 희양산에 있는 토지를 기증하며 국사에게 절을 지어 달라 청하였다. 국사가 그의 청을 받아들여 희양산으로 가 절을 지었고, 881년(헌강왕 7)에 봉암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후 병이 나서 다시 안락사로 옮겨 가 머무르다가 882년(헌강왕 8) 12월 18일에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세속 나이 59세, 법랍(法臘) 43년이었다. 왕이 그에게 ‘지증(智證)’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적조(寂照)’라는 탑호를 내렸으며, 비석에 국사의 행적을 새겨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최치원(崔致遠, 857~?)이 비문을 지어 892년(진성여왕 6)에 완성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탑비는 924년(경애왕 1)에 세워졌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聞慶鳳巖寺智證大師塔碑)」는 지금도 봉암사에 있다.
희양산문의 중심 사찰인 봉암사는 이후 쇠락하여 고려 초 국사의 손제자인 정진 대사(靜眞大師) 긍양(兢讓, 897~956)이 봉암사에 왔을 때는 이미 황폐해진 상황이었다. 이를 본 긍양이 935년(태조 18)에 태조(太祖, 재위 918~943)의 후원을 받아 봉암사를 크게 중창하며 희양산문을 중흥시켰다. 이에 희양산문의 실질적인 개창자는 긍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시기부터 희양산문은 남종선의 전통을 강조하게 되었다.
여러 이견이 있지만 국사는 희양산문의 개조(開祖)라고 추대받고 있다. 또한 여러 선승이 중국 유학을 다녀와서 남종선(南宗禪)을 전파하던 때에 중국에 유학을 가지도 않았으며, 당시 선종계 주류를 이루던 남종선이 아닌 북종선을 수용하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