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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즉원

한글정암 즉원
한자晶巖卽圓
유형인물
키워드미황사, 아암 혜장, 송파 각훤, 만덕사, 백련사
시대조선 후기
출생1738년
입적1794년
정암(晶巖)
주요주석처미황사(美黃寺), 백련사(白蓮寺) 등
조선 후기 송파 각훤의 법맥을 이은 미황사 승려
18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전라남도 해남군 달마산(達摩山) 미황사(美黃寺)에서 출가하여 송파 각훤(松坡覺暄, 1686~1764)의 법맥을 이었다. 백련사(白蓮寺)의 연혁을 기록한 사지(寺志)인 『만덕사지(萬德寺志)』에서는 즉원을 만덕사(萬德寺: 현 백련사) 조선 8대사(大師) 중 제7조(祖)로 추대하였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즉원(卽圓), 자(字)는 이우(離隅), 호는 정암(晶巖)이다. 속성은 김(金) 씨로 1738년(영조 14) 전라남도 영암 송지방(松旨坊: 현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서 태어났다. 3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9세 때부터 미황사(美黃寺) 승려인 재심(再心)의 은혜를 입어 미황사에서 자랐다. 16세에 머리를 깎고 법명을 받았으며, 20세 때부터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수학했다. 각훤에게 승려 교육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사집[四集: 『서장(書狀)』, 『도서(都序)』, 『선요(禪要)』, 『절요(節要)』]과 사교[四敎: 『금강경(金剛經)』·『능엄경(楞嚴經)』·『원각경(圓覺經)』·『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를,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에게서 『화엄경(華嚴經)』과 『화엄경현담(華嚴經玄談)』을 배웠다. 30세가 되기 전에 각훤에게 법통을 이어받았으니, 계보는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해운 경열(海運敬悅, 1580~1646)―취여 삼우(醉如三愚, 1622~1684)―화악 문신(華岳文信, 1629~1707)―설봉 회정(雪峰懷淨, 1678~1738)―송파 각훤―정암 즉원으로 이어진다.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수많은 사람에게 경전을 설법하였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비를 베풀고자 하였는데, 유명한 일화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거지가 절로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이가 많다면서 그를 내쫓았다. 그러자 선사가 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같은 이불 속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1794년(정조 18) 5월 13일 궁복도(弓福島)의 한 암자에서 세속 나이 56세, 법랍(法臘) 41년으로 입적하였다. 이름이 알려진 제자로 아암 혜장(兒庵惠藏, 1772~1811)이 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혜장의 부탁을 받아 선사의 명(銘)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여섯 창문[六牖] 단속 못하자 주인이 치달리니/ 오탁(五濁) 세계에서 탐(貪)·진(嗔)·치(癡)에 빠지는구나// 범은 조복이 가능하나 사심은 조복하기 어려워/ 팔만 해조음(海潮音) 있건만 행실은 비뚤어지네// 그 누가 실천하나? 즉원 선사가 실천하니/ 자신은 추워도 남을 입히고 당신은 배고파도 남을 먹이셨네// 맹수도 순종하고 걸인들도 자비심 가졌거늘/ 아! 네거리 길 가지 않고 굽은 길로 가시었네// 슬퍼하고 아쉬워하면서 겨우 비명을 지었네.” 선사는 휴정계 소요파 승려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행적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선사가 미황사에서 출가하였고, 백련사 조선 8대사 중 제7조로 추대받고 있으며, 현재 백련사 명부전(冥府殿)에 모셔져 있는 현판에 선사가 쓴 「시왕전 중수기(十王殿重修記)」가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베풀고자 했던 자비심은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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