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응화 유한 |
|---|---|
| 한자 | 應化有閑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송월, 성도암, 성도사 대흥사, 대둔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13년 |
| 입적 | 1885년 |
| 호 | 응화(應化) |
| 주요 주석처 | 대흥사(大興寺), 보림사(寶林寺), 송광사(松廣寺) |
조선 후기 송월의 법맥을 잇고 성도암을 중창한 승려
19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전라남도 해남 달마산(達摩山)으로 출가하여 송월(松月)의 법맥을 이었다. 성도암(成道庵: 현 성도사)을 중창하였다.
강백(講伯)의 법명은 유한(有閑), 자(字)는 심한(心垾), 호는 응화(應化)이다. 1813년(순조 13)에 태어나 어릴 때 달마산으로 출가하였다. 송월의 법통을 전해 받은 후에 낭암 시연(朗岩示演)‧침명 한성(枕溟翰醒, 1801~1876)‧한명 대운(漢明大雲, 1830~1868) 등 여러 승려를 찾아다니며 공부하여 불교뿐 아니라 여러 학문에도 통달하였다. 강석(講席)을 여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해남 두륜산(頭輪山)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 북암(北庵), 보림사(寶林寺) 서쪽 부도암(浮屠庵), 송광사(松廣寺) 보조암(普照庵) 등에 주석하면서 학인(學人)들을 가르쳤다. 해인사(海印寺)에서 경전을 간행할 때 증명법사(證明法師)로 참여하여 교학의 유포에도 힘썼다. 다시 대둔사로 돌아와 진불암(眞佛庵)과 상원암(上院庵)에서 각각 한 번씩 하안거(夏安居)를 지냈고, 성도암을 중창하였다. 이때 성도암에 낭암의 비와 송월의 탑을 세웠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1885년(고종 22) 4월 2일 인시(寅時: 새벽 3시~5시)에 세속 나이 73세, 법랍(法臘) 57년으로 입적하였다. 법을 이은 제자로 경담 두원(鏡潭斗元)·인담 두인(仁潭斗印)·경운 화윤(敬雲華允)·혼허 상능(渾虛尙能)이 있으며, 그 외 계를 받은 제자 등은 셀 수 없이 많다. 강백의 부도는 대둔사 남암(南庵) 오른편 산기슭에 세웠으며, 문집 1권과 일기 1권을 문인들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성도암은 여러 고승이 수행했던 암자로, 대둔사 13대강사(講師)들이 화엄 법회를 열기 전에 반드시 이곳에서 참선하며 정진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장소이다. 강백의 성도암 중창은 그가 당시 대둔사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승려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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