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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운 우능

한글응운 우능
한자應雲雨能
유형인물
키워드정토사, 백양사, 운문암
시대조선 후기
출생1854년
입적1896년
응운(應雲)
주요주석처백양사(白羊寺)
조선 후기 한양 용주의 법통을 잇고 동학농민혁명군에 참여한 정토사 승려
19세기에 활동하며 한양 용주(漢陽龍珠)의 법맥을 이은 정토사(淨土寺: 현 백양사) 승려이다. 동학농민혁명군에 참여하였다가 1896년(고종 33)에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법명은 우능[雨能, 『동사열전』에는 성능(性能)], 호는 응운(應雲)이다. 1854년(철종 5)에 전라남도 장성군 밀성(密城) 박씨(밀양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종수(宗洙)이고, 어머니는 양(梁)씨이다. 15세에 장성 백양산(白羊山) 정토사 보은 선사(普恩禪師)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영구산(靈龜山)‧조계산‧지리산의 여러 이름난 승려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불교뿐 아니라 각종 학문을 공부하였다. 다시 정토사로 돌아와 강론을 펼치고 한양 용주의 법통을 이었다. 즉 양악 계선(羊岳啓璇, 1757~1837)의 4대 법손이다. 1894년(고종 31)에 강백은 백양사 운문암(雲門庵)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때 경담 서관(鏡潭瑞寬, 1824~1904)이 운문암을 중창하고자 하여 강백을 화주(化主)로 삼았다. 중창 공사가 지연되던 중 백양사 천진암(天眞庵)에 머물고 있던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을 만나, 고장 농민군의 지도자가 되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지막 진산 염정골 싸움에서 농민군이 패한 이후, 다시 정토사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백양사 승려의 밀고로 관군에 체포되었다. 1896년에 전주 감영에서 옥사하였고, 상좌인 성희 기룡(成熙基龍, ?~1950)이 강백의 시신을 수습해 다비식을 치렀다. 강백의 법형제로는 보경(寶鏡)이 있으며, 법을 이은 제자로는 성희 기룡‧경신(敬信)‧학신(學信) 등이 있다. 『백열록(栢悅錄)』에 실린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6~1896)이 지은 「백양산 정토사 청류동기(白羊山淨土寺靑流洞記)」에 “꾀꼬리 노래와 제비 지저귀는 소리가 상하에 울리는 것은 응운이 원내에서 강창하는 것이다.(鸎音鷰語, 聲撤上下者, 應雲之演唱院中)”라는 구절이 실려 있다. 「응운강백전(應雲講伯傳)」에서도 강백의 강론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강론에 특출난 승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주부재판소 판사 이병훈 보고서(1896년 8월 8일 제4호, <사법품보(司法稟報)>)」에서는 그를 ‘비류거괴[匪類巨魁: 동학 무리의 큰 우두머리, 즉 접주(接主)]’로 소개하고 있다. 강백이 동학농민군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농민군의 주요 인물로서 활약했다는 사실 또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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