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응암 학성 |
|---|---|
| 한자 | 應庵學性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자행 책활, 대흥사, 대둔사, 청신암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30년 |
| 입적 | 1886년 |
| 호 | 응암(應庵) |
| 주요주석처 | 대흥사(大興寺) |
조선 후기 자행 책활의 법맥을 이은 대흥사 승려
19세기에 활동한 승려로, 두륜산(頭輪山)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서 출가하여 자행 책활(慈行策活, 1781~1862)의 법맥을 이었다.
선사(禪師)의 법명은 학성(學性), 호는 응암(應庵/菴)이며, 속성은 김씨로, 1830년(순조 30)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해남 두륜산 대둔사 자행 책활에게 출가하였다. 선사는 서주 의첨(犀舟懿沾)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에게 대승보살계(大乘菩薩戒)를 받았으며, 책활의 법통을 이었다. 책활은 대둔사 13대강사 중 한 명인 완호 윤우(玩虎倫佑, 1758~1826)에게 구족계를 받고, 덕홍(德弘)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이다. 특히 호훈(好訓)에게 전수받은 범패(梵唄)가 매우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동사열전』에 실려 있는 자행 책활의 전기(「자행선사전(慈行禪師傳)」)에 책활의 심법(心法)을 전해 받은 승려 3명 중 한 명으로 선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범패를 배운 자로는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선사가 범패는 전수받지 않은 듯하다.
선사는 주로 사찰 운영에 관련된 직책에 종사하였는데, 천성이 견고하여 승사(僧事: 수계, 설교 따위의 승려가 보는 사무)를 법도대로 처리하고, 하기 어렵고 괴로운 일들도 도맡았다고 한다. 주지나 유나(維那: 선방의 규율 책임자) 등의 직책을 역임할 때도 공사(公私)를 가려 공정하고 소상하게 처리하였다.
1886년(고종 23) 3월 15일에 두륜산 청신암(淸神庵)에서 세속 나이 57세, 법랍(法臘) 40년으로 입적하였다.
선사는 사찰의 사무와 재정 등에 종사한 대표적인 사판승(事判僧)으로 평가된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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