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은암 정호 |
|---|---|
| 한자 | 銀巖正浩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명적암, 대흥사, 대둔사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미상 |
| 입적 | 1834년 |
| 호 | 은암(銀巖) |
| 주요주석처 | 대흥사(大興寺) |
조선 후기 창인 선사의 법맥을 잇고 명적암을 중창한 대흥사 승려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활동한 승려로, 해남 두륜산(頭輪山) 대둔사(大芚寺: 현 대흥사)에서 출가하여 의암 창인(義庵暢印)의 법맥을 이었다. 1825년(순조 25)에는 명적암(明寂庵)을 중창하였다.
강사(講師)의 법명은 정호(正浩), 호는 은암(銀巖)이다. 속성은 송(宋)씨로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해남 두륜산 대둔사로 출가하였다. 1799년(정조 23)에는 의암 창인의 법통을 이었으니, 계보는 청허 휴정(淸虛休靜)-편양 언기(鞭羊彦機)-풍담 의심(楓潭義諶)-월담 설제(月潭雪霽)-환성 지안(喚醒志安)-호암 체정(虎巖體淨)-연담 유일(蓮潭有一)-의암 창인-은암 정호로 이어진다. 대둔사 13대강사 중 한 명인 완호 윤우(玩虎倫佑, 1758~1826)에게 경론을 배웠다. 이후 대둔사 상원암(上元庵)에서 강석을 열고 총섭(摠攝)을 맡았다.
대둔사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강사에 관한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가 1819년(순조 19)부터 1825년(순조 25)까지 명적암(明寂庵)을 중창한 사실이다. 명적암은 일찍이 승려 명안(明眼)이 화주(化主)를 맡아 중창한 절인데, 강사가 활동할 당시 낡고 무너진 곳이 많아 보수하였다고 한다. 명적암을 중창할 때 연담 유일(1720~1799)의 영각(影閣: 고승의 영정을 모시는 곳)을 함께 지었다. 이때의 중창을 기록한 것이 「명적암 중창 시주 명함기(明寂菴重創施主名啣記)」[표제는 「명적암중수기(明寂菴重修記)」]이다. 이 중수기는 1825년 7월에 강사가 화주 겸 시주로서 명적암을 중창하며 기록한 글이다. 1810년 가을에 명적암에 와서 1819년부터 모금을 하여 1825년에 중창을 완료한 내력을 상세하게 기재하고 있다.
1834년(순조 34) 3월 22일에 명적암에서 입적하였다. 다비할 때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설행하였더니 여러 산문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애도하였다. 문인으로 경월(鏡月)·수월(水月)·포운(浦雲)·연호(蓮湖) 등이 있으며, 계를 받은 제자[傳戒弟子]는 20여 명이다. 부도는 두륜산 왼쪽 산기슭에 세웠다고 한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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