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반승 |
|---|---|
| 한자 | 飯僧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공양, 재, 우파바사타, 우빠와사타, 포살 |
법회나 의식에서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
승려들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 혹은 각종 법회(法會)를 설할 때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뜻한다. 재(齋)라고도 한다. 고려(高麗) 이후에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반승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재는 포살(布薩)이라 지칭되는 범어(梵語) 포사다(Poṣadha) 혹은 우포사다(Upoṣadha)의 음역어로 ‘승려의 식사’를 의미한다. 포살은 베다 의례인 ‘우빠와사타(Upavasatha)’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재의 초기 형태는 『금강경(金剛經)』 「발기서(發起序)」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모습은 알기 어렵다. 초기에는 단순히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하던 의례였으나, 점차 승려가 설법(說法)을 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공양을 제공하는 설재(設齋)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후 ‘승려에 대한 음식 공양’만을 의미하던 것이 설법과 대규모 의례를 동반하는 ‘재회(齋會)’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공양의 대상인 소례(所禮)가 누구인가에 따라 반승의 의미는 시간과 장소, 또는 규모를 달리하며 보다 세분화·구체화되었다.
중국에서도 재는 공덕을 행하는 한 방편으로 설행되었다. 불교의례는 동진(東晉) 시대(317~420)부터 번성하기 시작하여 남북조시대(386~589)에 거의 형태가 갖추어졌다. 특히 후진(後晉) 고조(高祖, 재위 936~942)는 939년(천복 4) 국기일(國忌日)에 전국 절에서 향을 올리고 반승하는 것을 항식(恒式)으로 삼도록 하였다.
한국에서도 불교가 유입된 이래 승려에 대한 음식 공양이 시작되었는데, 고려시대 이후 재회를 ‘반승’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이 보인다. 반승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주로 왕실 차원에서 각종 법회의 의례와 더불어 성대하게 실행되었다. 대표적으로 인왕백고좌도량(仁王百高座道場)·금광명경도량(金光明經道場) 등 호국법회에서의 반승, 국왕탄생일 경축 반승, 기일(忌日) 때의 반승 등이 있다. 승려에 대한 공양이라는 목적을 넘어 각종 법회 때마다 법회의 목적인 공덕의 조성 수단으로 함께 거행되었다. 반승은 1018년(현종 9) 5월에 승려 십만 명에게 음식을 공양한 이래로, 1396년(공민왕 18) 5월 영전(影殿)에서 승려 삼천 명에게 공양하기까지 꾸준히 행해졌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총 77회의 반승 기사가 보이는데, 특히 예종(17회), 인종(16회), 의종(19회), 명종(10회) 대에 많이 보이며, 공민왕 대까지도 꾸준히 설행되었다. 조선 전기에도 지속되다가 점차 사라졌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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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처님께서 비사리성에 계실 적에 비사리의 사람들이 해마다 반승을 하고 식사를 마치면 옷과 물건들을 보시하니, 여러 비구들이 이를 받지 않기에 여러 단월들이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방편을 써서 여러 비구가 옷을 취하여 수용함을 허락하시어 보시하는 자가 복을 얻고, 받는 자가 이익을 얻게 하소서.” “그렇게 하라.” 이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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