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공 |
|---|---|
| 한자 | 不空 |
| 산스크리트어 | Amoghavajra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금강정경, 금강지, 밀교, 대흥선사, 역경, 역경승 |
| 시대 | 8세기, 성당(盛唐) |
| 출생 | 705 |
| 입적 | 774 |
| 시호 | 대변정광지불공삼장(大辯正廣智不空三藏) |
| 주요주석처 | 정영사(淨影寺), 대흥선사(大興善寺) |
| 비소재지 | 대흥선사(大興善寺) |
8세기에 활동하며 금강지를 계승하여 금강계 밀교를 선양한 중국 밀교의 대성자
8세기에 활동한 서역 출신 역경승으로 금강지(金剛智, 669?~741)를 계승하여 중국 밀교의 2조로서 중국에 금강계(金剛界) 밀교를 선양하였다. 구마라습(鳩摩羅什, ⓢ Kumārajīva, 344~413), 진제(眞諦, 499~569), 현장(玄奘, 602?~664?)과 더불어 중국 4대 역경가로 칭해지며, 선무외(善無畏, 637~735)·금강지와 더불어 개원삼대사(開元三大士)로 불린다. 법휘(法諱)는 지장(智藏), 칙호(勅號)는 대광지삼장(大廣智三藏), 시호(諡號)는 대변정광지불공삼장(大辯正廣智不空三藏)이다.
불공(不空)은 범어(梵語) 아목구발절라(阿目佉跋折羅, ⓢ Amogha-vajra)의 음사어인 불공금강(不空金剛)의 약칭이다. 출생지는 기록에 따라 북천축(北天竺: 북인도), 사자국(師子國: 스리랑카) 등으로 나뉘어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상인인 숙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왔다. 당시는 인도 중기 밀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 같은 근본 경전이 성립된 이후의 밀교를 중기 밀교라고 한다. 두 경전 중 어느 것을 기반으로 하느냐에 따라 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로 나뉜다. 불공이 활동하던 시기보다 조금 앞서 선무외가 당(唐) 장안(長安)에서 『대일경』 등을 번역하며 태장계 밀교를 선양하였다. 그러나 불공이 장안에 도착했을 때는 금강지가 막 『금강정경(金剛頂經)』 계통의 밀교를 중국에 처음 전하던 시기였다. 불공 또한 금강지의 문하로 출가하여 『실담장(悉曇章)』과 『성명론(聲明論)』 등을 배웠는데, 그때부터 이미 총명함과 예리함을 나타냈다고 한다. 724년(개원 12)에 낙양(洛陽) 광복사(廣福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오부(五部)·삼밀(三密: 身密‧語密‧意密) 등을 모두 전수받았다.
일찍이 금강지는 자신이 가져온 금강계 경전이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입적할 때 불공에게 인도에서 구법(求法)할 것을 유언하였다. 그리하여 불공은 금강지가 내왕했던 길을 따라 함광(含光), 혜변(慧辯) 등의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스리랑카와 인도 전역 등을 여행하며 밀교 경전들을 구하고 여러 존자의 밀인(密印), 문의성상(文義性相) 등에 대한 가르침도 받은 후 746년(천보 5)에 경론 500여 부를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이때 지장국사(智藏國師)라는 호를 받았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 불공은 정영사(淨影寺)와 대흥선사(大興善寺) 등에 주석하며 기우제와 관정도량을 설행하고 역경 사업에 종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에 황실을 비호하며 현종(玄宗, 재위 712~755), 숙종(肅宗, 재위 756~761), 대종(代宗, 재위 762~778) 3조(朝)에 걸쳐 황제의 관정국사(灌頂國師)를 지내고 존숭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대종 때 시홍려경(試鴻臚卿)에 제수되며 ‘대광지삼장’이라는 호를 받았다.
774년(대력 9) 6월에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알고 오고금강저(五鈷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 등을 헌납하고 세수 70세, 법랍 50년으로 입적하였다. 대종은 3일 동안 정무를 중지하여 애도를 표하고 사공(司空)으로 추증하였으며, ‘대변정광지불공삼장’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또한 대흥선사에 사리탑을 건립하게 하였다. 제자로는 혜랑(惠朗)·함광(含光)·혜초(惠超, 704~787) 등이 있다. 혜초는 신라 승려로 인도를 순례한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이다.
국사는 『금강정경』 계통의 밀교 경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경전 110부 143권을 번역하였으며, 인도 중기 밀교를 중국에 정착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불경을 번역할 때 산스크리트어와 한자의 음운(音韻)을 엄밀하게 대응시키는 체계를 확립하여 중국 음운학에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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