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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무참

한글담무참
한자曇無讖
산스크리트어Dharma-rakṣa
유형인물
키워드대반열반경, 역경, 역경승
시대5호16국시대 북량(北涼)
출생385
입적433
이칭법풍(法豊)
5세기 초 북량에서 활동하며 『대반열반경』 등을 번역한 중인도 출신 역경승
5세기 초에 북량(北涼)에서 주로 활동하며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보살계경(菩薩戒經)』·『보살계본(菩薩戒本)』 등을 번역한 중인도 바라문(婆羅門) 출신 역경승이다. 담무참(曇無讖)은 범어 다르마락샤(Dharma-rakṣa)의 음사어로, 법풍(法豊)으로 번역된다. 담마참(曇摩讖), 담무참(曇無懺)이라고도 한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권유로 달마야사[達摩耶舍, 중국말로 법명(法明)]의 제자가 되어 소승(小乘)과 오명(五明)의 여러 논(論)을 두루 배웠다. 이후 백두 선사(白頭禪師)에게 『대반열반경』을 얻고 나서는 대승(大乘)에 전념하였다. 주술(呪術)에도 밝아, 가는 곳마다 영험을 보여 서역에서는 대신주사(大神呪師) 혹은 대주사(大呪師)라고 불렀다. 계빈국(罽賓國: 카슈미르)·구자국(龜玆國: 쿠차)·둔황(敦煌)을 거쳐서 412년(현시 원년)에 감숙성(甘肅省) 고장(姑臧: 간쑤성 우웨이시)에 이르렀다. 감숙성에 건국된 북량(北涼)의 왕인 하서왕(河西王) 저거몽손(沮渠蒙遜, 재위 401~433)은 평소 불법을 신봉하였는데, 그를 불러 후하게 대접하며 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북량에 머물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대반열반경』 첫 부분[初分] 10권, 『대방등대집경』 31권, 『비화경(悲華經)』 10권,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 10권, 『보살계경』 8권,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 6권 등을 번역하였다. 이때 필수(筆受)를 담당한 자가 사문 혜숭(慧嵩)이다. 이후 『대반열반경』의 부족한 나머지 부분을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돌아가 우전국(于闐國)에서 경의 가운데 부분[中分]을 구한 뒤 다시 고장으로 돌아와 번역하였다. 그렇게 414년(현시 3)부터 421년(현시 10, 송 영초 2)까지 『대반열반경』의 뒷부분[後分]을 제외하고 모두 번역하였다.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을 북본(北本)이라 한다. 중국 남쪽에서는 법현(法顯, 338~422)이 418년에 범본 『대반열반경』을 번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6권)과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40권)을 편집하여 만든 『대반열반경』(36권)을 주로 보았는데, 이를 남본(南本)이라 하여 담무참의 번역본과 구별하기도 한다. 담무참은 ‘북량의 지보(至寶)’라 불리며 저거몽손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는 등 오래도록 그와 가깝게 지냈다. 어느 날 북위(北魏)의 탁발도(託跋燾: 太武帝, 재위 424~451)가 담무참의 도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저거몽손에게 그를 보내지 않으면 북량을 공격하겠다고 하였다. 때마침 법사가 다시 서역에 가서 『대반열반경』의 뒷부분[後分]을 구하기를 청하였다. 탁발도의 명을 거부할 수 없으면서도 담무참이 혹 북위를 위해서 북량에 위해를 가할까 봐 두려워진 저거몽손은 법사를 물자와 함께 서역으로 보내 주는 척하며 자객을 보내 살해하였다. 이때가 433년(의화 3), 담무참의 세수 49세였다. 법사가 끝내 번역하지 못한 『대반열반경』 뒷부분은 그 후에도 도량사(道場寺)의 혜관(慧觀) 등이 구하고자 하였으나 번번이 얻지 못하다가, 당(唐) 건국 후인 664~665년에서야 야나발타라(若那跋陀羅, Jñānabhadra)에 의해 번역되었다. 비록 『대반열반경』을 온전히 번역하지는 못했지만 담무참이 번역한 경률은 중국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대반열반경』은 모든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성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대반열반경』 연구가 성행하여 강남에서 열반학파(涅槃學派)가 흥기하는 데 일조하였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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