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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발타라

한글구나발타라
한자求那跋陀羅
산스크리트어Guṇabhadra
유형인물
키워드역경, 역경승, 공덕현, 마하연
시대남북조시대
출생394
입적468
이칭공덕현(功德賢), 마하연(摩訶衍)
주요주석처기원사(祇洹寺), 와관사(瓦官寺) 등
5세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잡아함경』 등을 번역한 중인도 출신 역경승
남북조시대인 5세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잡아함경(雜阿含經)』(50권) 등을 번역한 중인도 출신 역경승이다. 구나발타라는 범어 구나바드라(Guṇabhadra)의 음사어로, 공덕현(功德賢)으로 번역된다. 바라문(婆羅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천문, 수학, 의술, 주술과 오명론(五明論) 등에 정통했다. 『아비담잡심론(阿毘曇雜心論)』을 읽고 불교에 귀의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을 무렵에는 삼장(三藏)에 통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승(小乘)을 공부하였으나, 후에 소승을 버리고 대승(大乘)을 배우며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화엄경(華嚴經)』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대승을 익혔기에 대승이라는 의미를 가진 마하연나(摩訶衍那)의 준말, 즉 마하연이라고도 불렸다. 사자국(師子國: 스리랑카)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435년[유송(劉宋) 원가(元嘉) 12]에 중국 광주(廣州: 광저우)에 이르렀다. 법사가 송에 도달한 이후의 행적은 사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고승전(高僧傳)』 권3에 따르면 법사가 광주에 도달하자 유송 문제(文帝, 재위 424~453)가 사신을 보내 영접하고 그를 건강(建康) 기원사(祇洹寺)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곳에서 법사는 불교 교리에 밝은 여러 승려를 모아 『잡아함경』을 번역하였다. 이후 동안사(東安寺)에서 『법고경(法鼓經)』을, 단양군(丹陽郡)에서 『승만경(勝鬘經)』과 『능가경(楞伽經)』을 번역하였다. 후에 초왕(譙王)이 형주(荊州)를 평정하고서 법사에게 함께 신사(辛寺)로 가서 머물 것을 청하였는데, 신사에서도 『무우왕경(無憂王經)』·『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무량수경(無量壽經)』(1권) 등 총 백여 권을 번역하였다. 『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紀)』 권3에 따르면, 435년에 문제가 그를 기원사에 머무르도록 했으며, 이후 443년(원가 20)까지 양도(楊都)의 와관사(瓦官寺)에서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중사분아비담(衆事分阿毗曇)』 12권·『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 4권 등 모두 78부 161권을 번역하였다. 이때 혜관(慧觀) 등이 필수(筆受)하고 제자인 법용(法勇)이 중국말로 바꾸었다[傳語]고 한다. 『고승전』과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는 법사가 원가 연간(424~453) 말기에 보인 신이한 행적도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정변(政變)을 예언하는 등의 일이다. 468년[태시(泰始) 4] 정월에 세수 75세로 입적하였다. 구나발타라는 중국에서 범본 경전의 한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중국으로 건너와 활동하였다. 특히 그가 번역한 『잡아함경』은 4종의 『아함경』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경전으로 추정되며, 후대에 나타난 대승불교 사상의 기초가 되는 교리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당시 『아함경』 중 유일하게 번역되지 않았던 방대한 분량의 『잡아함경』을 번역하였다는 데서 구나발타라의 역경 활동이 동아시아 불교계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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