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일재 |
|---|---|
| 한자 | 日齋 |
| 유형 | 의례민속 |
| 키워드 | 재승, 반승, 대중공양 |
| 세부장르 | 의례, 민속(유형, 무형, 기타) |
| 시대 | 조선 전기 |
하루 또는 한 끼의 식사를 승려에게 제공하는 행위
하루 또는 한 끼의 식사를 승려에게 제공하는 행위이다.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재승(齋僧)⸱반승(飯僧)이라고 하며, 인도의 전통문화에서 유래하였다.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하면 공덕이 크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있었다. 『사십이장경』에는 음식을 접대하는 대상에 따라 공덕이 커진다고 하였다.
“백 사람의 악인에게 공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선인(善人)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천 사람의 선인에게 공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오계(五戒)를 지키는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 오계를 지키는 만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은 한 사람의 수다원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경전에서 삼세의 제불보다 상위의 대상을 설정한 것은 중국불교의 영향으로 결국 붓다를 무념(無念: 잡념이 없음), 무주(無住: 머물지 않음), 무증(無證: 증득할 것도 없음)한 존재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 때(1418~1450) 사리각을 수리하는 데 동원된 승려들에게 당시 도성 사람들이 하루 또는 한 끼 음식을 제공하면서 일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두 집 혹은 네다섯 집 혹은 수십 집이 공동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경쟁하다시피 달려가며, 환자와 별감도 가끔은 임금의 명으로써 반찬 등을 제공하였다. 대군과 군 및 재추(宰樞)로서 불교를 좋아하는 자와 부유한 상인까지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공양하였다. 공궤하는 밥과 떡은 모두 한 동이로 셈하는데, 한 집에서 공궤한 것이 거의 백 동이나 되어, 산같이 쌓여 있었다. 이때 악공과 광대[俳優]들이 많이 모여 줄을 지어 돌고, 풍악을 연주하며 승려들에게 ‘음성공양(音聲供養)’을 하자, 승려들이 즐거워하며 미륵세계가 이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고 한다.
· 집필자 : 이성운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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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횃불과 같다. 수천 수백 사람이 각기 불을 붙일 나무를 들고 찾아와선 불을 붙여 돌아가 음식을 익혀 먹고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본래의 횃불은 예전 그대로이다. 복도 그와 같다.” ……중략…… “범인(凡人) 백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한 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고, 착한 사람 천 명을 공양하는 것이 5계를 지키는 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만 못하며,……중략……천억 명을 가르치는 것이 부처가 되기를 바라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한 명의 불학(佛學:菩薩)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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