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강유문 |
|---|---|
| 한자 | 姜裕文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불교청년, 고운사, 포교법 개설, 인도불교사, 경북불교 |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 출생 | 1898년 |
| 입적 | 1941년 |
| 이칭 | 묵당(黙堂) |
| 주요주석처 | 의성 고운사 |
불교 청년운동에 앞장선 불교 언론인이자 활동가
조선불교 청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불교학자이자 교육자였다. 중앙불교전수학교와 일본 다이쇼대학에서 학문을 닦고, 불교 역사와 포교법에 대한 저술을 남긴 그는 한국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했다.
출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호는 묵당(黙堂)이다. 출가 사찰인 의성 고운사의 후원으로 1928년 중앙불교전수학교에 입학하여 불교 교우회 창립, 전문학교 승격 운동, 순회강연단 조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 후, 학생회를 조직하고 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 청년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31년 일본 다이쇼대학 사학과에 진학하여 동경동맹을 창립, 한국불교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불교사 연구에 매진했다. 강유문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창립을 지원하고, 1931년 동경동맹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불교청년운동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조선으로 돌아와 경북 안동에서 불교부인회를 조직하고, 고운사의 포교사로서 지역 불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1937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로 임명된 후 포교법과 인도불교사를 강의하며 불교 교육에 힘썼다. 교재가 없던 시절에 직접 『포교법 개설』과 『인도불교사』를 저술하여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1년 3월, 44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입적 직전까지도 한국불교 역사와 대중 포교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경북불교』와 『불교』에 실린 그의 원고는 신라시대 불교사를 다룬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불교 역사와 포교에 대한 저술을 통해 한국불교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저서 『포교법 개설』과 『인도불교사』는 불교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불교 청년운동을 통해 많은 청년 불교인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에도 불교를 통한 대중 계몽과 교육에 힘쓴 인물로 평가된다. 불교 청년운동과 저술은 일제에 맞서 조선불교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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