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혜진 |
|---|---|
| 한자 | 慧眞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정화불사, 불영사, 6·25, 연화사, 장안사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8년 |
| 입적 | 1984년 |
| 주요 주석처 | 울진 불영사, 진주 연화사 |
정화 불사와 종단 외호에 헌신한 승려
수좌로 묵묵히 수행과 참선에 전념하며, 정화불사와 종단 외호에 큰 역할을 했다. 겸손한 인품과 말보다 앞서는 행동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다.
1908년 2월(음력)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났다. 성(姓)은 김씨. 본관은 전주. 부친이 면장을 지낼 정도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사서삼경을 일찍 마쳤다. 이후, 천문과 주역에 관심을 가지던 중, “절에 가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했다. 장안사에서 연담(蓮潭)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정진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후 많은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참선 수행에 몰두했다. 연담 스님은 석우(石友), 석두(石頭), 상월(霜月), 석하(石下) 스님의 은사이다.
여러 선원에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에 전념했다. 금강산과 오대산, 해인사 등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해인사에서 입승 소임을 맡기도 했다. 화두는 ‘무(無)’자였다. 참선을 통한 정각(正覺)을 목표로 삼아, 제자들에게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선만이 진정한 수행자의 길이며,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후학들에게 “참선을 해야 ‘참 중’이다. 항상 하심하고 신심을 갖고 참선해라. 그것이 ‘참 중’이 되는 정도(正道)이다.”라고 당부했다.
상좌들에게 무심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비쳤지만, 내면의 자비심을 지니고 있었다. 탁발을 마친 상좌에게 “탁발은 돈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심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제자들이 출가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늘 묵묵히 지켜보았다.
불교 정화불사와 종단 외호에도 헌신했다. 총무원 재무부장으로 종단 소송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심마니들과 협력하여 산삼을 판매하며 빚을 갚은 일화는 책임감과 청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종단이 갚으나 내가 갚으나 마찬가지”라고 했다는 일화에서 공심(公心)과 헌신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울진 불영사 주지를 지내고, 6.25전쟁 때는 진주 연화사 주지를 지냈다.
1984년 음력 4월 10일 원적에 들었다. 세수 76세, 법랍 57년. 유지에 따라 별도의 탑과 비도 조성하지 않았다. 제자로 수성·지성 스님, 오형근 교수 등이 있다.
한국 사회와 불교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내면을 닦으며,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수행과 정진에 집중한 수행자로 평가받는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