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학월경산 |
|---|---|
| 한자 | 鶴月京山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불교정화, 총무원장, 동국대, 동화사, 적조사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17년 |
| 입적 | 1979년 |
| 호 | 학월(鶴月) |
| 이칭 | 손희진(孫喜璡) |
| 탑소재지 | 서울 적조사 |
| 비소재지 | 서울 적조사 |
불교 정화와 한국불교 발전에 기여한 조계종 총무원장
불교 정화에 앞장서고, 총무원장 등 종단 요직을 역임하며 한국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청정 승단 구현과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17년 6월 21일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1936년 4월 8일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암(秀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운(海雲)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유점사 강원 대교과를 수료(1940)했다. 1945년 7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법명은 경산(京山)이며, 학월(鶴月)이라는 당호를 사용했다.
교학을 연찬한 후에는 지리산 칠불암, 영축산 통도사, 덕숭산 정혜사 등 여러 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하며 참선 수행을 했다. 계율, 참선, 교학을 아우르는 수행을 강조하며 대승불교 가르침을 실천했다. 청정승단 구현과 불교 중흥의 원력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1949년 8월 경남교무원에서 대덕(大德) 법계를 받았으며, 1955년 효봉·청담·월하 스님들과 함께 비구승 대표로 불교 정화운동에 참여했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을 전후해 총무원 교무부장, 동국학원 이사장, 팔공산 동화사 주지, 총무원장, 한국종교협의회장, 한국불교총연합회장, 중앙종회 의장으로 교단 발전과 더불어 종교간 교류를 통한 사회 안정에도 기여했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도봉산 천축사에서 무문관 수행을 했고, 1972년 동화사 주지로 부임했다. 총무원장 재임 시 종비생(宗費生, 조계종에서 장학금을 받는 스님)과 군승(軍僧: 군에서 불교를 포교하는 스님) 제도를 확립해 인재 양성과 군(軍) 포교의 단초를 놓았으며,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는 역사적 성과를 성취했다. 서울 성라수도원 조실과 미국 LA 달마사 조실을 지내기도 했다.
1979년 12월 25일 총무원장 재임 당시 세수 63세, 법랍 42년으로 입적했다. 장례는 12월 29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1980년 1월 6일자 불교신문에 ‘총무원장 경산 스님’의 신년사가 실렸는데, 미리 쓴 이 원고에서 “자비와 지혜는 상대방을 용서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안다. 자비와 지혜로 모든 복덕(福德)이 구족하게 되는 법”이라고 설했다. 저서로 『삼처전심(三處傳心)』이 있다. 적조사에 사리탑이 있다.
청정한 수행자의 길을 지키며 불교 정화와 종단 통합에 헌신했다. 특히 수행과 계율을 중시하며, 종단 통합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청정 승단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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