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지월병안 |
|---|---|
| 한자 | 指月炳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인욕보살, 월정사, 해인사, 불교정화운동, 여석회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11년 |
| 입적 | 1973년 |
| 호 | 지월(指月) |
| 이칭 | 김봉만(金奉萬) |
| 탑소재지 | 합천 해인사 |
| 비소재지 | 합천 해인사 |
인욕보살로 존경받은 해인사 선승
‘가야산의 인욕보살’로 불리며, 깊은 자비심과 인욕 수행으로 후학들에게 존경받은 수행자이다. 출가자들이 실천해야 할 하심과 인욕으로 후대에 영향을 끼쳤다.
1911년 2월 4일, 전북 남원군 동면 인월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옥적, 모친은 이씨였다. 본관은 청도이며, 속명은 김봉만(金奉萬).
16세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지암(智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오대산 상원사 한암(漢岩) 스님 회상에서 정진하고, 25세에 범어사에서 일봉(一鳳)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금강산 마하연에서 만공(滿空) 스님을 모시고 깨달음을 얻었다. “환화공신(幻化空身; 환영이 만들어낸 몸뚱이)이 곧 천진불(天眞佛)”이라고 했다. 51세 이후 해인사에 주석하며 인욕과 자비를 실천했다. 42안거를 성만한 수좌로 해인사 유나(維那, 참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는 큰스님)를 지내고, 해인총림 설립 후 첫 주지를 역임했다. 불교 정화운동에 참여하며 한국불교의 청정수행 가풍을 회복하고자 했다. 운허, 홍경, 영암, 탄허, 고암, 벽안, 구산, 석주, 자운, 석암, 청우, 대휘, 서옹, 월하, 청담 스님 등과 여석회(餘石會)를 조직해 수행 가풍 진작과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순화(純化)될 때 무량한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나게 되는데, 불조(佛祖)의 말씀대로 불조의 가신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야만 하겠다.”라면서 “일인(一忍)이 장락(長樂)이라 했는데, 어찌 하지 아니하며, 하면 되는 것을 하지도 않고서 안 된다고만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1973년 3월 27일, 문도들에게 “불조(佛祖)의 말씀대로 각자 노력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입적했다. 세수 63세, 법랍 47년. 부도와 비는 해인사에 봉안했다. 상좌로 도견, 도성, 운범, 도완, 도선, 도일, 도각, 도허, 도혜, 도공, 도산, 도청, 도현, 도원 스님 등이 있다. 입적 후 문도들이 행장과 사진을 담은 『지월대선사영첩(指月大禪師影帖)』을 발간했다.
‘가야산의 인욕보살’로 자비와 인욕을 실천하며, 한국불교에 크게 기여했다. 스님의 삶은 출가자들에게 하심과 자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