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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갑(석계성안)

한글유성갑(석계성안)
한자石谿性眼
유형인물
키워드범어사, 동산 스님, 제헌의원, 6·25, 건국훈장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09년
입적1950년
석계(石谿)
이칭유성갑(柳聖甲), 유중환(柳重桓)
비 소재지전남 고흥군 고흥읍 남계리(석계 유성갑선생 기념비)
승려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제헌의원을 지낸 정치인
범어사 스님 출신으로, 일본 유학 중 민족운동에 참여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제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친일 잔재 청산에 나섰다. 불교계와 정치계에서 두루 활약하며,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적 실천을 몸소 보여 준 인물이다. 1909년 11월 11일 전남 고흥군 점암면에서 부친 유화권과 모친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흥이며, 속명은 유중환(柳重桓)이다. 법명은 성안(性眼), 법호는 석계(石谿)이다. 1930년 동래(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사교과를 이수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성서학원중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에 참여했는데, 안중근 의사 사진과 독립선언문을 은닉한 혐의로 체포되어 6개월간 투옥되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해 통화현에서 한인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귀국해 국민청년당 감찰위원장, 중앙검찰대장 등을 역임하고, 1948년 5월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헌법과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에 힘썼다. 1950년 6.25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그해 10월 6일 총살당했다. 1951년 6월 10일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엄수됐다. 이후 건국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제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친일 세력과 맞섰다. 범어사 스님 출신으로 불교와 사회를 연결하는 활동을 펼치며실천적 삶을 살았다. 후손들은 유성갑의 불교 기록물을 조계종 중앙기록관에 기증했다. 특히 용성, 동산 스님과의 인연이 담긴 서한과 자료들은 근현대 불교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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