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성운지효 |
|---|---|
| 한자 | 聖雲智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불교정화운동, 청정수행, 범어사, 선승, 무문관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9년 |
| 입적 | 1989년 |
| 호 | 성운(聖雲) |
| 이칭 | 김병수(金炳秀) |
| 주요 주석처 | 부산 범어사 |
| 탑 소재지 | 부산 범어사 |
| 비 소재지 | 부산 범어사 |
불교 정화에 헌신하며 엄격한 계율과 실천을 강조한 선승
범어사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청정 비구 수행자의 모범을 보이며, 불교 정화운동과 수행정신을 실천한 대표적 선승이다.
1909년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흥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11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1944년 사미계, 1946년 비구계를 받았다.
1947년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범어사,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성주사, 다보사 등 전국의 선원에서 30안거를 성만했다. 1954년부터 은사 동산 스님을 모시며 왜색 불교를 청산하고 청정 수행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다. 1955년 6월 10일 대처승들이 조계사에 난입해 단식하는 비구승을 구타하는 상황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할복(割腹)을 결행했다. 총무원 총무부장과 재무부장으로 불교 정화 완수와 종단 안정에 최선을 다했으며, 종단이 안정을 찾아가자 1966년과 1972년 천축사 무문관(無門關: 바깥 출입을 금하고 오로지 화두 참구에 매진하는 수행처)에서 6년간 고행했다. 종단의 중요한 순간마다 주지와 조계종 감찰원장(1972) 등 소임을 맡아 교단의 안정을 도모했다.
1962년 1월 15일 동산 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성운(聖雲)을 법호로 받았다. 당대에 존경받는 선승이며 큰스님이었지만, 평생 법상(法床)에 오르지 않았다. 후학들에게는 늘 “공부 열심히 해야 해”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1965년 은사인 동산 스님 열반 후 범어사 주지(5회 역임)를 맡아 사찰 위상을 높이고 스님과 신도들을 인도했다. 1978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고, 대구 동화사와 합천 해인사 유나(維那: 참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는 큰스님)로 납자(衲子: 참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했다. 1966년 한국불교 재건과 중흥을 위해 범어사에 총림(叢林)을, 1973년 법흥사 흥령선원 복원을 추진했다.
1989년 9월 28일 범어사에서 세수 81세, 법랍 47년으로 입적했다. 영결식과 다비식이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평생 선 수행에 전념하며 불교 정화운동을 주도했고, 후학들에게 선 수행의 본질을 전하는 데 힘썼다. 또한, 무문관에서의 고행과 불교 정화에 대한 헌신으로 불교사적 영향력을 남겼다. 불교 정화운동의 핵심 인물로, 수행자로서의 엄격한 계율 준수와 청정 수행의 모범을 보이며 한국 불교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