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화봉유엽 |
|---|---|
| 한자 | 華峰柳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와세다 대학, 항일운동, 무정부주의, 불교신문, 해인대학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2년 |
| 입적 | 1975년 |
| 호 | 화봉(華峰) |
| 이칭 | 유춘섭(柳春燮), 석두하삼봉(石頭下三峰) |
| 탑소재지 | 순천 송광사 |
| 비소재지 | 순천 송광사 |
선을 ‘멋’으로 풀어내며 자유 추구한 수행자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해 참선과 교학의 통합적 가르침을 펼쳤다. 일본 와세다대학 수료 후, 불교문학과 사상을 전개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다양한 불교운동을 이끌며 후학을 양성했다.
1902년 10월 13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유춘섭(柳春燮)이고, 본관은 문화(文化)다. 부친은 유성안, 모친은 김성희이며 3남 3녀 중 장남으로 성장했다. 전주 신흥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을 갔지만 도쿄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법명은 유엽(柳葉)이며, 호는 화봉(華峰)이다. 효봉, 금봉 스님과 함께 석두 스님의 뛰어난 제자 3명을 지칭하는 ‘석두하삼봉(石頭下三峰)’으로 불린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와 금강산에서 교학 연찬과 참선 수행을 병행하고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사상적 세계를 구축했다.
문단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만해 스님 권유로 불교 잡지에 원고를 게재했다. 해인사 강사 후학을 양성하고, 항일운동과 더불어 하기락·전진한과 함께 무정부주의(anarchism) 운동에 가담했다. 1945년 8월 18일 조선불교혁신준비대회에 참여하고, 8월 20일 건국청연 당원들과 조선불교 조계종 종무원을 방문해 종단 운영권을 인수했다. 1946년 불교중앙총무원 교무부장에 취임하고, 독립노동당 외무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불교신문, 서울신문, 국제신보 주필, 해인대학(경남대) 교수를 지냈다. 『민족문화』를 간행하고 『화봉섬어(華峯蟾語)』, 『멋으로 가는 길』 등의 저서를 펴냈다. 1962년 사형(師兄)인 효봉 스님 증명하에 다시 삭발하고, 1964년 순천 선암사 주지로 임명됐다.
1975년 11월 21일 서울 법련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4세, 법랍 51년. 순천 송광사에 부도와 비가 모셔져 있다.
선(禪)을 ‘멋’으로 정의하며,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했다. 선과 교를 통합한 수행자로 문학과 불교 사상에도 기여했으며, 항일운동과 불교 정화에 참여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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