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해안 봉수 |
|---|---|
| 한자 | 海眼鳳秀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내소사, 계명학원, 서래선림, 불교전등회, 중국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1년 |
| 입적 | 1974년 |
| 이칭 | 김성봉(金成鳳) 김봉수(金鳳秀) |
| 주요 주석처 | 부안 내소사 |
| 탑 소재지 | 부안 내소사 |
| 비 소재지 | 부안 내소사 |
불교전등회를 창립해 중생을 제도한 선승
참선과 교학을 익히고, 중국 유학 후 문맹 퇴치와 인재 양성에 기여하였으며, 불교전등회를 창립해 중생 제도에 헌신했다.
1901년 3월 7일(음) 전북 부안군 산내면 격포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치권, 모친은 은진 송씨이다. 속명은 김성봉(金成鳳)으로 훗날 김봉수(金鳳秀)라고 했다. 본관은 김해.
1917년 부안 내소사에서 만허(滿虛)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만암(曼庵)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18년 백양사 광성의숙 보통과를, 1920년 백양사 지방학림 중등 과정과 사교과를 졸업했다. 학명 스님과 석전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1922년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고, 중국 북경대학에서 유학한 후 1925년 귀국했다. 1927년 내소사 주지에 취임했으며, 1931년 월명선원 안거 후 36안거를 성만했다. 1932년 산내면에 계명학원을 세워 문맹 퇴치에 나섰다. 백양사 본말사 순회포교사(1935), 김제 금산사 주지(1945), 금산사 서래선림 조실(1946)을 지냈다. 1950년에는 내소사에 서래선림을 개원했다.
재가불자들에게도 7일 정진을 통해 견성할 수 있다고 참선 수행을 강조했다. “오늘 당장 공부하지 않고 내일, 내년, 내생에 하겠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며 “이 몸뚱이 없어지면 공부할 기회도 없다”라고 정진을 당부했다. 오도송이다.
鐘鳴鍾落又竹篦(종명종락우죽비) 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에
鳳飛銀山鐵壁外(봉비은산철벽외) 봉황새가 은산철벽 밖으로 날아가네.
若人問我喜消息(약인문아희소식) 사람들이 나에게 기쁜 소식을 묻는다면,
會僧堂裡滿鉢供(회승당리만발공) 회승당 안에 만발공양이라고 하리라.
1969년 불교전등회(佛敎傳燈會)를 창립하여 전법과 수행을 이끌었다. 1974년 3월 9일 내소사 서래선림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4세, 법랍 57년.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生死不到處(생사부도처) 생사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
別有一世界(별유일세계) 하나의 세계가 따로 있네.
垢衣方落盡(구의방낙진) 때 묻은 옷 바야흐로 벗어버리니,
正是月明時(정시월명시) 비로소 밝은 달이 원만하게 뜨는구나.
부도는 부산 내소사에 있다. 상좌로 혜산, 동명, 철산 스님 등이 있다. 참선과 교학을 겸비하고 자비심을 바탕으로 불교 교육과 전법에 나서며 중생 구제를 위해 수행 정진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