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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혜일

한글포산혜일
한자飽山慧天
유형인물
키워드만공, 출가, 환속, 해인사, 금강산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12년
입적1971년
이칭윤달선(尹達善)
세속의 경계를 넘나들며 깨달음 추구한 인물
만공 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해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불교를 널리 알리고 불교정화에도 참여했지만, 만년에 환속했다. 1912년 10월 12일, 서울 종로에서 대한제국 시종무관 윤치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윤달선(尹達善)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5촌 당숙 윤치호는 기독교인으로 유명하다. 제4대 윤보선 대통령과 사촌이다. 법명은 혜천(慧天), 법호는 포산(飽山), 별명은 ‘지리산의 도인’이다. 부친은 국권 피탈후 후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다. 수송학교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9년(18세)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연루되어 오대산에 입산했다가 만공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만공 스님을 시봉하며 금강산 마하연 등에서 정진했다. 성철·청담·운허 스님도 함께 수행했는데, 사촌형 윤보선이 유산(3만 6,000원, 논 200마지기 상당)을 들고 찾아왔지만,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를 본 석두 스님이 “우리 절에 도인이 있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1931년 지리산 칠불선원 조실에 이어 1935년 합천 해인사 조실로 추대됐으며, 백련암·칠불암·금산 태고사 등에서 수행하며 제자를 길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사불산에서 은거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해인사 범종을 일본에 뺏기지 않도록 지켰으며, 1948년에는 금산 태고사에 주석했다. 만년에 환속하였다. 1971년 9월 6일, 논산 개태사에서 입적했다. 제선·정영·법인·도원·범행 스님 등을 제자로 두었지만, 스승 환속 후에 노(老)스님인 만공 선사의 제자로 적(籍)을 바꾸었다. 만공 스님 법맥을 이어받아 제자를 길렀으며, 환속 후에도 불교계 인물들과 인연을 유지하며 불법을 실천했다. 출가와 환속을 오가며 일관되게 ‘깨달음과 자비’를 추구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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