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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허흥선(관음종)

한글태허흥선(관음종)
한자太虛弘宣
유형인물
키워드관음종, 묘각사, 대중화, 백화암, 한일불교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05년
입적1979년
구도행하며 포교한 관음종 초대 종정
불교를 통한 구도와 포교에 헌신하였으며, 대한불교관음종을 창종했다. 26세에 출가하여 평생을 수행과 포교에 바치며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1905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0년(26세)에 어머니 별세 후 출가했다. 1927년 일본 게이오대(慶應大)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1929년 순천 선암사에서 조선불교 선교양종 교정을 지낸 경운 원기(擎雲元奇) 스님에게 교학을 공부했다. 이후 소요산 백운암에서 1,000일 안거 정진을 하고, 1940년 중국 산서성 명찰을 순례했다. 1940년 서울 숭인동 낙산에 묘각사를 창건해 포교를 시작했으며, 해방 후에는 삼칠일 기도를 봉행했다. 6.25전쟁 기간에는 경북 상주에 백화암(白華庵)을 세워 참선을 수행하고 『법화경』을 사경(寫經: 경전을 옮겨 적음)하며 6년간 수행했다. 1957년 법화 계통을 규합해 일승불교현정회(一乘佛敎顯正會)를 창립해 회장에 취임했다. 서울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설법(1958~1960)을 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강연하는 등 대중 포교를 실천했다. 1965년 대한불교불입종(지금의 대한불교관음종)을 창종해 초대 종정을 지냈으며, 1970년 한일불교친선협회 고문으로 한국과 일본의 불교문화 교류에 기여했다. 청소년 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해 1973년 마하연불교학생회를 창립하고 불교 잡지 『범성(梵聲)』을 창간해 법화 사상과 불교 교리를 알렸다. 1975년 8월 『범성』 5월호에 게재한 「창종 10주년의 의미」에서 “불교중흥의 헌신적인 노력이 역사와 사회의 요청으로 태동되기 시작하였다.”라면서 “신명을 바칠 수 있도록 노력하여, 구경(究竟)에는 이에 머물게 하고자 참불교의 생활신조를 선포하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생활 불교를 지향하면서 새로운 불교를 추구했다. “우리는 겨레의 눈이 되겠다, 우리는 겨레의 등불이 되겠다, 우리는 겨레의 길잡이가 되겠다.”라는 3대 강령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79년 6월 24일, 세수 74세, 법랍 50년으로 서울 묘각사에서 입적했다. 대한불교관음종을 창종하고 초대 종정으로 불교의 대중화와 포교에 크게 기여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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