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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봉창섭

한글취봉창섭
한자翠峰昌燮
유형인물
키워드송광사, 불교정화, 6·25, 임제대(하나조노), 불일회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898년
입적1983년
취봉(翠峰)
이칭임창섭(林昌燮)
주요 주석처순천 송광사
탑 소재지순천 송광사
비 소재지순천 송광사
검소한 삶으로 정진하며 송광사 복원 불사한 납자
내외전(內外典)을 겸비한 학승이자 평생 참선 수행한 선승이다.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며 송광사 복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불법(佛法)의 가치를 전했다. 1898년 8월 29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임(林) 상묵. 법명은 창섭(昌燮), 법호는 취봉(翠峰)이다. 15세에 하동 쌍계사에서 출가해, 19세에 순천 송광사에서 남호(南湖)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고, 호은(虎隱)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송광사 강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 임제대학(지금의 하나조노대학)에 유학하여 신학문을 연마했다. 귀국 후에는 송광사 강사로 후학을 양성하며 참선 수행과 교학 연찬을 병행했다. 1924년에는 송광사에서 세운 벌교 송명학교 교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공, 효봉 스님 회상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해방 후에는 1949년, 1963년, 1970년 세 차례 송광사 주지를 지냈다. 6.25전쟁 당시 불타 버린 송광사 복원 불사를 위해 앞장섰다. 절약과 탁발로 복원 불사금을 모연했는데, 기차도 비좁은 3등 칸을 이용하고, 외출 시 공양시간이 되면 절에서 갖고 온 떡 몇 조각으로 때웠다. 후학들에게 “중은 어쩌던지 신심이 있어야 되야. … 중은 돈도 쉐양[소용] 없고 명예도 쉐양 없어. 다 망상이여.”라며 “부지런히 해야 되야.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못 쓰는 것이여.”라고 경책했다. 1969년 조계총림 개설 당시 송광사 염불원 회주와 불일회 초대 회장으로 수행 가풍 진작에 앞장섰다. 1983년 6월 28일 오후 9시경, 세수 86세, 법랍 71년으로 송광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상좌로 광훈·원공·범종·달성·법현·일우 스님, 재가제자로 김정수·김종채가 있다. 송광사에 부도와 비가 있다. 법정 스님은 비문에서 “맑고도 투철했던 생활 규범으로 승보의 도량을 빛내시더니 노스님 떠나신 지 어느덧 10년, 빈자리 아직도 메워지지 않았네. 다시 낯익은 이 도량에 오셔서 청정한 승가람을 이뤄 주소서.”라고 찬했다. 무소유와 검소한 삶을 실천하며 장학기금을 기부하는 등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불교 정화운동과 송광사 복원에 헌신한 선승으로 불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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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李智冠 編著. | 伽山佛敎文化硏究院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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