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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담순

한글추담순
한자秋潭純
유형인물
키워드대정대학, 불교정화운동, 만해, 법주사, 불교신문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898년
입적1978년
추담(秋潭)
이칭박정걸(朴定杰)
주요주석처소요산 자재암, 속리산 법주사
탑소재지소요산 자재암
자비심으로 포교한 수행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속에서 독립운동과 교육, 불교 정화 운동을 이끌며 자비의 가르침을 실천한 대표적인 선지식이다. 1898년 10월 27일(음력), 함흥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박정걸(朴定杰)이다. 법명은 순(純), 법호는 추담(秋潭)이다. 함흥보통학교와 함흥공립중학교에 다녔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일본 다이쇼대(大正大)를 수료하고, 1924년 함경도 설봉산 귀주사에서 출가했다. 귀주사 본말사가 세운 능인학원과 인수한 함흥 일능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금강산 건봉사 대교과를 이수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만해 스님과 교유했다. 이때 충남 부여와 청양에서 주민 계몽운동을 했다. 1937년 삼각산 약사사(서울 봉국사)에 입산 수도하였다. 이때 스승 회명(晦明) 스님에게서 추담(秋潭)을 법호로 받았다. 해방 후에는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섰다. 총무원 교무부장, 불교신문 주간, 법주사 주지 겸 충북종무원장, 중앙종회 부의장, 강화 전등사 주지, 설악산 신흥사 주지, 소요산 자재암 주지 등의 소임을 보면서 불교 정화운동과 포교 활동을 이끌었다. 항일 정신이 투철해 일본인 관광객들의 시주금을 거부하였으며, 글씨·설법·문장에도 뛰어났다. 한국불교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법규위원, 감찰위원 등을 지냈다.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후학과 신도들에게 “사상도, 금전도, 예술도 다 자비(慈悲)만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남을 감화(感化)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경책했다. 또한 “나만 복되게 해 달라 빌기보다 일체의 잡념을 없애고, 다 함께 바르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1978년 11월 26일(음력 10월 26일) 소요산 자재암에서 입적했다. 세수 81세, 법랍 40년. 장례는 조계종 원로원장으로 엄수됐다. 저서로 『투병과 인생』, 『모순의 합리성』이 있으며, 문도들이 법문을 모아 『추담설법집』을 발간했다. 자비의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의식과 불교정화 운동에 헌신한 불교계의 큰 어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비와 불법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등불이 되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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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李智冠 編著. | 伽山佛敎文化硏究院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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