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초부적음 |
|---|---|
| 한자 | 草夫寂音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만공, 선학원, 불교정화, 호국역경원, 유교법회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0년 |
| 입적 | 1961년 |
| 이칭 | 김영조(金永祚), 김적음(金寂音) |
| 주요주석처 | 서울 선학원, 공주 마곡사 |
| 탑소재지 | 공주 신원사 |
| 비소재지 | 공주 신원사 |
불교 정화운동에 헌신한 선학원 이사장
일제강점기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지키고, 선학원 이사장으로 불교 정화운동과 선 수행의 부흥을 이끌었다. 만공(滿空) 스님의 법제자로 뛰어난 수행력과 의술로도 널리 알려질 만큼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1900년 11월 1일, 경북 군위군 불로동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김재화, 모친은 유매실. 속명은 김영조(金永祚)이다. 법호는 초부(草夫), 법명은 적음(寂音)이다. ‘초부’는 만공 스님이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이’라는 의미로 내린 것이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5세에 김천 직지사에서 제산(霽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30년 만공 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으며, 1932년 범어사에서 도첩을 받았다. 1930년대에 선학원 상임포교사와 조선중앙선리참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데 주력했다. 1936년 10월 4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禪)이란 무엇이오?”라는 기자의 질문에 “참된 나[진자아(眞自我_]를 몸으로써 깨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1935년 조선불교 선종 종헌 반포 당시 총무부장에 선임됐으며, 1941년 조선불교 정통성을 회복·계승하기 위해 개최된 유교법회(遺敎法會)에도 동참했다. 또한 같은 해 범행단(梵行團)을 결성해 청정 비구 승단의 기초를 닦았다.
해방 후 (일본) 정토종 본원사를 인수해 호국역경원을 설립하여 경전 한글화를 시도했다. 의술에도 능하여 많은 환자를 돌보았으며, 이 과정에서 창출된 재원을 선학원 운영과 불교 정화운동 기금으로 쾌척했다. 1950년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이사장, 1954년 정화운동 발기인대회 부위원장, 교단정화추진위원회 부위원장, 1955년 공주 마곡사 주지, 1956년 선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61년 10월 3일, 서울 선학원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61세, 법랍 39년, 제자로는 벽암 스님이 있다.
일제강점기 만공 스님의 법을 이어 조선불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행력과 의술, 불교 정화운동에 대한 헌신은 불교계에 영향을 미쳤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