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철우태주 |
|---|---|
| 한자 | 鐵牛太柱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독립운동, 수월, 혜월, 참선포교문, 유마경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895년 |
| 입적 | 1979년 |
| 호 | 철우(鐵牛) |
| 이칭 | 정만갑(鄭萬甲) |
| 탑소재지 | 구미 금강사 |
| 비소재지 | 구미 금강사 |
참선 수행하며 독립운동에 가담한 수좌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출가 후 철저한 참선 수행과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인물이다. 경허 스님 제자인 수월, 혜월 스님에게 법을 전수 받았으며,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후학들을 지도한 스님이다.
1895년 3월 8일(음력), 경남 밀양 가곡리에서 부친 정기철(鄭其鐵)과 모친 천주옥(千珠玉) 사이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정만갑(鄭萬甲), 본관은 동래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906년 12월 1일(음력) 13세에 밀양 표충사에서 정암(正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보경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15년 해인사에서 제산(霽山)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밀양 표충사 호산 스님, 고성 옥천사 서응(瑞應) 스님, 순천 선암사 진응(震應) 스님 문하에서 경론을 배웠다. 1911년 해인사 선원에서 안거 이후 25하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묘향산에서 수월 스님, 부산 선암사에서 혜월 스님의 지도 아래 정진했다. 1912년 4월 25일(음력) 함경도 갑산에서 경허(鏡虛) 스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 혜월 스님, 운암 스님과 함께 찾아가 법구(法軀)를 수습했다.
27세에 통영 용화사 조실로 추대되었을 정도로 수행의 깊이를 인정받았다. 이후 팔공산, 금강산 등 제방 선원에서 조실로 후학을 지도했다. 대분심(大忿心: 깨우치지 못한 것에 대한 분한 마음), 대의심(大疑心: 화두를 타파하고자 하는 간절한 의심), 대발심(大發心: 깨달음을 취하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을 공부의 방편으로 제시했다. ‘참선포교문’과 ‘권구심문’을 통해 참선 수행의 중요성과 무상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참선과 교학에 밝아 『유마경』 등을 강의하며 불법을 전파했다.
양산 미타암에서 묵언(黙言) 수행할 당시 ‘독립궐기문’ 작성을 도와준 사실이 발각되어 고초를 겪었다.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는데, 모진 고문에도 묵언수행을 풀지 않았다. 이후 일절 붓을 들지 않았다.
1979년 3월 12일 오후 11시 20분 구미 금강사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84세, 법랍 71년. 다비식은 김천 직지사에서 엄수됐다. 상좌 정우 스님이 『철우선사 법어집』을 간행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