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종원영재 |
|---|---|
| 한자 | 宗圓英宰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성지순례, 청년운동, 금강저, 스리랑카, 불교혁신론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0년 |
| 입적 | 1927년 |
| 호 | 백광(白光), 범난(梵鸞), 종원(宗圓) |
| 이칭 | 이영재(李英宰) |
일제강점기 인도 순례길에서 입적한 청년 승려
충북도청에서 근무하던 엘리트로 출가 후 국내외에서 인도철학을 연구하고, 인도(스리랑카) 순례 중 젊은 나이에 입적한 청년 승려이다. 깊은 신심과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수행은 일제강점기 청년 승려들의 귀감이 되었다.
1900년 충북 청주군(지금의 청주시) 외산리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이영재(李英宰)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학업 성적이 뛰어나 신동으로 불렸다. 11세에 청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수석 졸업했고, 청주농업학교를 마친 후 충북도청 학무계에서 근무했다. 백광(白光), 범난(梵鸞), 종원(宗圓) 등 세 가지 호를 사용했다. 백광은 조선 불교계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겠다는 뜻을, 범난은 불교의 큰 인물이 되겠다는 의미를, 종원은 불법을 선양하겠다는 원력을 담았다.
1918년 당시 법주사 주지 남파(南坡) 스님과 초월(初月) 스님을 만나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했다. 법주사 주지 호암(護庵) 스님의 제자로 강원을 마쳤다. 일본 유학을 떠나 종교대학과 동경제국대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했다. 범어와 팔리어도 익혔다. 유학 시절 조선 불교 유학생들과 『금강저(金剛杵)』 잡지를 발간하고, 청년회를 이끌며 민족의식을 높이는 활동을 했다. 1922년 조선일보에 「조선불교혁신론」을 기고했다. 1926년 불교 성지 순례의 원력을 세우고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유학생들에게 “부디 공부하여, 판검사로 나가지 말고 우리 불교계를 위해 일생을 바쳐다오.”라고 당부했다.
1927년 10월 11일, 콜롬보에서 풍토병에 걸려 입적했다. 세수 28세. 입적하기 전, 자신의 순례 여정에서 불법을 통해 인류 문제를 해결하고 불타의 뜻을 빛내겠다는 강한 신념을 밝혔다. 『불교』에 일본에서 출발해 중국 상해를 거쳐 석란도(錫蘭島, 스리랑카)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도석기(渡錫記)」를 연재했다.
깊은 신심과 철저한 수행으로 모범이 되었으며, 인도(스리랑카) 순례는 일제강점기 불교계와 민족운동에 큰 의미를 남겼다. 『금강저』를 발간해 불교 신앙과 민족운동을 연결하는 청년운동을 전개했다. 인도철학과 고고학을 연구하며 불교와 민족운동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불교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