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조종현 |
|---|---|
| 한자 | 鐵雲宗玄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선암사, 불교청년운동, 만해, 조정래, 전국학인대회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6년 |
| 입적 | 1989년 |
| 호 | 철운(鐵雲), 벽로(碧路), 예암산인(猊巖山人). 여시산방(如是山房) |
| 이칭 | 조용제(趙龍濟), 조종현(趙宗玄) |
| 주요주석처 | 순천 선암사 |
시조문학 중흥을 이끈 승려 출신 불교 사상가
불교계에서 활동하며 시조문학을 부흥시킨 인물로, 불교 사상과 시를 결합한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교육자이자 시조시인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역사적 현실과 불교적 관조를 시에 담았다.
1906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조용제(趙龍濟). 본관은 함안이다. 법명은 종현(宗玄), 호는 철운(鐵雲), 벽로(碧路), 예암산인(猊巖山人)이다. 당호는 여시산방(如是山房)이다.
1922년, 13세의 나이로 순천 선암사에서 금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범어사 전문강원을 졸업하고, 1928년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전국학인대회에 참여했다. 조선불교학인연맹 기관지 『회광』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32년 중앙불교연구원 유식과를 졸업하고 불교 청년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대한불교법화종 이사, 대한불교 불입종 교정원장 등을 역임했다. 만해 스님의 애국심에 감화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비밀 독립운동 조직인 만당(卍黨)의 재무위원으로 활동했다.
문학적 활동도 두드러졌다. 1929년 동요 「엄마 가락지」를 조선일보에, 잡지 『불교』에 시조 「정유화(庭有花)」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시조들은 불교 사상과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중기 시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배어 있으며, 후기 시에서는 불교 정신세계와 자연에 대한 깊은 관조가 느껴진다. 주요 저작으로 『자정의 지구』, 『의상대 해돋이』, 『나그네길』 등이 있다.
해방 후 선암사 부주지를 맡았다가 사찰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다 주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46년 선암사 주지로 부임했지만 환속했으며, 1948년 광주제일고 교사와 동국대 이사 등 교육자로도 활동했다. 1960년 대한불교법화종 이사, 1971년 대한불교불입종 교정원장을 맡았다.
1989년 8월 31일 86세로 입적했다. 마지막 말은 “빙그레 웃으며 가자. 염불하고 시도 읊고 노래도 한 곡 부르며 가자.”였다. 『태백산맥』 저자인 조정래 작가가 아들이다.
시조문학과 불교 사상을 결합한 작품 활동으로 현대 시조문학의 중흥을 이끌었다. 『시조 문학』을 발간하며 신인 시조시인의 발굴에 힘썼고, 불교 경전 번역에도 공헌했다. 역사적 현실을 반영한 체험과 불교적 사유가 결합된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불교 사상과 현실적 경험을 시조에 담아내며, 한국 현대 시조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불교 사상과 실천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