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인암 봉록

한글인암 봉록
한자忍庵鳳祿
유형인물
키워드송광사, 인암시조선, 6·25, 추강, 수선사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08년
입적1986년
인암(忍庵)
주요 주석처순천 송광사
탑 소재지순천 송광사
비 소재지순천 송광사
평생 송광사에 주석하며 청빈하게 수행한 선승
1908년 전남 순천(현 송광면) 낙수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이기모(李基模), 모친은 이평월(李平月)이다. 독실한 신심을 지닌 가정에서 성장해 18세에 송광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봉록(鳳祿), 법호는 인암(忍庵)이다. 은사는 성남(惺南), 법사는 추강(秋江) 스님이다. 송광사 강원 대교과를 수료하고, 수선사(修禪社)에서 4하안거를 성만하며 교학과 참선을 병행했다. 1936년 대선법계(大禪法階), 1941년 중덕법계(中德法階)를 받았다. 1955년 송광사 교무국장, 1967년 송광사 주지를 역임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5월 11일(음력 4월 7일) 밤 11시 송광사 전각에 화재가 발생했다.국군이 조계산을 봉쇄한 상황에서 금당(錦堂), 성공(性空) 스님과 함께 경비망을 피해 들어갔다. 하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 역부족이었지만 국사전(國師殿)은 지켰다. 전쟁이 끝난 후 대중과 함께 송광사 복원 불사에 나섰다. 송광사 참배객들에게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안내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후학들에게는 “불교는 대자대비(大慈大悲) 정신이 근간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교훈도 대자대비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198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시간이 다 되었어.”라며 “송광사에서 청춘을 바쳐 살았지만 후회는 없고 서원(誓願)이 하나 있을 뿐”이라고 대중에게 당부했다. 임종게와 다름없었다. “악한 말 하지 않고 목숨 다할 때까지 마음 착하게 쓰다 가야지. 희망하는 것은 오로지 선(善)하게 사는 것이오.” 1986년 11월 14일 송광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8세, 법랍 60년. 평생 시조를 통해 삶과 수행을 일기에 기록했는데, 입적 이듬해인 1987년 3월 1일 불일출판사에서 『인암시조선(忍庵時調選)』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300여 편의 시조는 불교계와 한국 사회를 반영한 귀중한 기록이다. 평생 송광사에서 청빈하게 살면서 수행하고, 6.25전쟁으로 불탄 도량을 복원했다. 일기를 시조(時調)로 기록해 근현대 송광사 역사를 남겼다. 송광사의 역사와 함께하며, 청빈한 삶과 강한 애사심을 실천한 스님으로 평가받는다.
· 집필자 : 이성수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