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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도원

한글우화도원
한자雨華道元
유형인물
키워드천진난만, 영각사, 해인사, 발우공양, 다보사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03년
입적1976년
우화(雨華) 우하(雨下)
이칭나주골의 도인 할아버지
주요주석처나주 다보사
탑소재지나주 다보사
비소재지나주 다보사
무욕의 삶으로 대중을 감화시킨 수행자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철저하게 수행하며, 만공·혜월·한암·용성 스님 등 선지식 회상에서 정진한 수행자였다. 법문은 간결했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으며, 단순 담백한 삶과 수행은 후학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1903년 4월 7일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묵묵히 앉아있기 좋아했으며, 15세 때 할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무상을 깊이 느껴 출가를 결심했다. 덕유산 영각사에서 영명(靈明)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합천 해인사 불학강원(佛學講院)에서 교학을 공부한 뒤 참선 수행에 집중했다. 금강산, 오대산, 묘향산 등의 사찰에서 만공, 혜월, 한암, 용성 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정진했다. 만공 스님은 성철, 우화 스님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전한다. 언제나 새벽 2시에 일어나 죽비를 치며 참선에 들었고 발우공양을 철저히 지켰다. 1935년 천성산 내원사 동국제일선원에서 운봉(雲峰) 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다른 스님과 법거량하는 것을 보고 운봉 스님이 “금일 도원(道元) 정상에 우화(雨華)가 만지(滿地)로다.”라고 칭찬했다. 운봉 스님이 ‘꿈을 전하는 게송’이라는 의미의 ‘전몽게(傳夢偈)’를 전했다. 계율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모기가 물어도 잡지 않는 것을 궁금해 하는 상좌에게 “지가 좋아서 빨아 먹는데, 뭐하러 잡냐.”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법문을 청하면 “내가 뭘 알아야 법문을 하제.”라며 사양했으며, “수좌는 참선에 들어 열심히 화두를 살피는 것이 공부”라고 강조했다. 1976년 10월 1일, 나주 다보사에서 “금성산(錦城山)에도 해가 저무는구나, 각자 노력하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세수 74세, 법랍 60년. 제자로 적명, 정진, 일륜 스님 등이 있다. 평생 꾸밈없이 수행하며, 철저한 계율 실천과 단순한 삶으로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보였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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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李智冠 編著. | 伽山佛敎文化硏究院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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