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신화수 |
|---|---|
| 한자 | 申華秀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옥천사, 독립운동, 김상옥, 혁신공보, 의열단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896년 |
| 주요주석처 | 고성 옥천사 |
일제강점기 불교계 항일운동을 이끈 승려 출신 지사
고성 옥천사 출신의 스님으로 3.1운동을 비롯해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가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하였는데. 은사는 전하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와의 인연을 통해 불교계 독립운동에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당시 중앙학림 재학생인 오택언 스님이 통도사에 보낸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으며, 양산 신평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촉발시켰다. 이후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19년 4월 지하 독립운동단체인 혁신단(革新團)에 가담하여, 기관지인 『혁신공보』 발행에도 참여했다. 폭탄 제조, 군자금 모집 등 무장 독립운동도 전개했으며 의열단원과 조선청명군대본영에서 특파한 개벽당원(開闢黨員)으로도 활약했다. 1917년 옥천사에 주석할 당시에는 한봉진(韓奉眞) 스님과 함께 애국지사를 숨겨 주었다.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도, 살인예비, 출판법 위반, 총포 화약류 취체령 위반, 사기 혐의로 재판받았는데, 이는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1921년 11월 경성지방법원 판결문과 1923년 10월 경성 복심법원 판결문에는 재적(在籍)이 ‘경남 고성군 영오면 오서리 163번지’로, 1923년 재판 기록에는 주소가 ‘경성부 당주동 16번지’로, 신분이 불교학원(불교중앙학림) 학생으로 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는 ‘고성 옥천사 승려’로 기록돼 있다.
1946년 3월 광복단(光復團) 한성지부 ‘비서과장부서’에 소속되었고, 1946년 5월 ‘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취지로 여운홍 등 106명이 조직한 사회민주당에도 참가했다. 1947년에는 사회민주당 훈교국장(勳敎局長)에 선임됐으며, 1948년 1월 29일에는 ‘김상옥 의사 관계 동지 일동’ 사진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 이후 활동과 입적 시기 및 장소는 전해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김상옥 의사와 함께 항일 투쟁을 이끌었지만 제자나 후대에 전승된 기록이 현재로서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