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소소소천 |
|---|---|
| 한자 | 簫韶韶天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금강경, 독립운동, 범어사, 김좌진, 불교정화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897년 |
| 입적 | 1978년 |
| 호 | 소소(簫韶) 의탁(宜倬) |
| 이칭 | 신세순(申世淳), 신소천(申韶天) |
| 탑소재지 | 부산 범어사 |
『금강경』 보급과 경전 한글화에 기여하며 중생 교화한 스님
늦은 나이에 출가했지만, 평생 조국의 독립과 중생 교화를 위해 헌신한 선승으로 『금강경』독송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전하며 불법의 진리를 널리 알렸다.
1897년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나라를 잃은 비운을 느껴서, 자연스럽게 독립에 대한 염원을 키워 갔다. 법호인 소소(簫韶)는 중국 순임금이 지은 음악 또는 악기를 의미하는데,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중생에게 법을 전하려 했던 뜻으로 보인다.
출가 이전 청년 시절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고 독립군(북로군정서)에 입대해 김좌진 장군 휘하에서 활동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4년 귀국했다.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아 산에 은신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금강경』 을 독송하며 수행했다. 1935년(39세)에 『금강경강의』를 간행하고 각지를 순회해 주목받았는데, 이때부터 ‘신법사(申法師)’라 불리었다.
1952년(56세) 부산 범어사에서 용성 스님을 은사(위패 스승)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출가했다. 범어사 선원에서 참선과 수행에 몰두했는데, 『금강경』 을 독송하며 깨달음을 성취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 주력했다. 1953년에는 금강경독송구국원력대(金剛經讀誦救國願力隊)를 만들어 『금강경』 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불교 정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며, 총무원 교무부장(1955), 서울 대각사 주지. 경주 불국사 주지. 구례 화엄사 주지를 지냈다. 1965년부터 인천 보각사에 주석하며 참선 수행과 불법 홍포에 전념했다.
출가 후에는 부산, 마산, 진주 등지에서 『금강경』독송 운동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 『금강경』가르침을 바탕으로 ‘각운동(覺運動)’을 주창했다. 개인의 깨달음뿐 아니라, 구국(救國)과 세계평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 불사를 추진해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78년 4월 15일, 부산 범어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3세, 법랍 27년. 『활공원론(活功原論)』, 『금강경 강의』, 『근본진리에서 본 구세방략(救世方略)』, 『반야심경 강의』, 『원각경 강의』 등의 저서를 남겼다. 제자로 창봉(蒼鳳), 법종(法宗), 일파(一波), 일천(一泉), 정영(靜影), 정우(靜宇), 지철(智徹), 고봉(古峯), 고담(古潭), 고원(古園) 스님 등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