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비룡 |
|---|---|
| 한자 | 飛龍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천왕사, 금강경, 월정사, 한암, 마하연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901년 |
| 입적 | 2000년 |
| 호 | 삼광당(三光堂) |
| 주요주석처 | 금강산 마하연, 해인사, 월정사, |
참선과 지계를 실천하며 남북통일을 기원한 승려
1901년 4월 8일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23년 인제의 한 사찰에서 한암 스님 법문을 듣고 불교와 인연을 맺었으며, 1927년 3월 오대산 월정사에서 한암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같은 해 사미계를 수지했다. 1947년 4월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한암 스님에게 받은 ‘무(無)’자 화두와 더불어 탄허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를 중시하며 수행했다. 사구게는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는 의미이다.
금강산 마하연, 해인사, 월정사, 중대, 불영사, 정암사, 백양사, 갑사, 대흥사 등 제방 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하며 화두를 참구했다. 1940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동산, 고봉, 서암, 화담 스님 등과 3년간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수행에 전념했고, 1958년 제주도 천왕사(天王寺)를 창건해 후학을 지도했다. 6.25 전쟁 기간에도 수행을 멈추지 않았는데, 전남 진도군 병풍도 토굴에서 정진할 때 쌀을 훔쳐가는 강도에게 반찬값을 챙겨줬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로 자비심이 있었다. 평생 중생 교화에 힘쓰며 “온갖 괴로움의 기실은 자기에 착(着)하기 때문”이라며 아상을 버릴 것을 강조했다. 1971년 제주 관음사 주지, 1986년 조계종 원로의원, 1987년 천왕사 조실, 1992년 월정사 조실로 후학을 인도했다.
2000년 1월 28일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입적했다. 세수 100세, 법랍 74년.
내여백운래(來與白雲來) 흰 구름과더불어 와서,
거수명월거(去隨明月去)밝은 달 따라서 가네.
거래일주인(去來一主人) 한 주인이 가고 옴이,
필경인도생(畢竟人道生)” 필경 도인의 삶이라
영결식과 다비식은 월정사에서 엄수됐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