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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현로

한글보문현로
한자普門玄路
유형인물
키워드한암, 상원사, 봉암사, 탁발, 대구 보현사
시대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출생1906년
입적1961년(비문), 1956년(『보문선사』)
자운(慈雲), 보문(普門)
이칭신기옥(申奇玉)
주요주석처오대산 상원사, 동화사 대구포교당 보현사
탑소재지평창 월정사
비소재지평창 월정사
한암 스님의 법맥을 이어 두타행한 수좌
한암 스님의 법맥을 이어 불법(佛法) 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수행자이다. 평생 참선과 두타행(頭陀行)으로 정진하며 실천했다. 1906년 7월 2일 경북 문경 마성면 남호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금란법의(金란(襴)法衣)를 입은 노스님에게 염주를 받는 태몽을 꾸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뒤 문경 마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 편입했다. 대구 인쇄소 직공, 부산 부두 노동 책임자로 일했는데, 부산항에서는 임금을 체불한 일본 관리에 맞서 근로자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1936년 2월 8일, 금강산 유점사를 거쳐 마하연선원에서 불가와 인연을 맺었다. 마하연에서 정월대보름에 성불도(成佛圖)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장안사역으로 향하다, 시신을 지게에 진 할아버지에게 경책을 받는 꿈을 꾸었다. 그길로 마하연으로 돌아가 석우 스님의 권유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참선 수행에 전념하여 상원사에서 연희전문을 나온 사형(師兄) 현칙(玄則) 스님 등 선승(禪僧)들과 함께 정진했다. 1939년 한암 스님의 법을 이으며 ‘자운(慈雲)’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1940년부터 상원사에서 정진하며 ‘보문(普門)’을 자호로 삼았다. 오대산 적멸보궁, 통도사 극락암, 내원암에서 수행하고, 1947년에는 성철, 청담, 자운 스님 등과 봉암사에서 결사를 했다. 1948년부터 속리산 복천암, 도리사 태조선원, 해인사 선원, 직지사 천불선원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6.25전쟁 기간에는 탁발을 하며 전쟁고아와 상이용사를 돌보는 등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수행을 이어 갔다. 1955년 동화사 대구포교당 보현사 주지로 부임하였으며, 1956년(비문에는 1961년) 4월 6일(음력) 세수 55세, 법랍 25년으로 입적했다. 대중에게 입적 사실을 알리지 말고 부처님오신날 이후에 장례를 치르라는 당부를 남겼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팔공산 동화사에서 엄수됐다. 평생 일의일발(一衣一鉢)과 주장자, 삿갓, 바랑이 전부였을 만큼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수행에 전념했다. 주로 오대산과 팔공산 일대에서 두타행과 탁발 수행을 실천했다. 제자로 희섭(喜燮) 스님이 있다. 물질적 욕심 없이 공양주나 나무를 해 오는 소임을 자처하는 등 하심(下心)을 하며, 오로지 법을 구하는 선사의 길을 걸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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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李智冠 編著. | 伽山佛敎文化硏究院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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