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벽초 경선 |
|---|---|
| 한자 | 碧超鏡禪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만공, 선농일치, 수덕사, 울력, 불사 |
| 시대 | 근현대(일제강점기, 대한민국) |
| 출생 | 1899년 |
| 입적 | 1986년 |
| 주요 주석처 | 예산 수덕사 |
| 탑 소재지 | 예산 수덕사 |
| 비 소재지 | 예산 수덕사 |
만공 스님의 법맥을 이어 평생 선농일치를 수행한 승려
만공(滿空) 스님의 법맥을 이어 선농일치(禪農一致)를 몸소 실천한 선지식으로,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평생 울력과 불사에 전념하며 수행자의 모범을 보였다.
1899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마씨이다. 아버지(마정식)도 출가할 정도로 불교와 인연이 깊다. 1908년 마을에 탁발하러 온 만공 스님에게 감화를 받고 출가했다. 주로 만공 스님을 시봉하며 수덕사와 금강산, 오대산 등에서 수행을 이어 갔다. 만공 스님의 법손으로 평생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지 않고, 오로지 실천으로 가르침을 전했다. 스님이나 신도가 3배를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말라”며 1배만 하도록 했다. 만공 스님과 나눈 법거량이 여러 편 전하는데 화두를 받았을 때의 문답은 다음과 같다.
“요즘에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느냐.”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찾고 있습니다.”
“너무 넝쿨이 많구나. 공부하는 법을 한 가지 일러주겠다. 너의 그 한 생각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찾아보거라.”
1940년부터 1970년까지 수덕사 주지 재임 시 황무지였던 사찰 전답(田畓)을 개간하고 1,080개의 돌계단을 쌓는 등 선농일치 가르침을 실천했다. 정혜사 축대를 정비하고, 수덕사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62년 수덕사가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될 때 주지였다. 조계종 중앙종회의 1, 2, 3, 6, 8대 의원을 역임했다. 1985년 덕숭총림 제2대 방장으로 추대된 후에도 직접 울력에 참여하며, 수좌들에게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공부”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소 행(行)을 통해 제자들을 지도해 ‘보현보살의 화현’이라고 불리었다.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나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즉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정신을 몸소 보여 주었다. 1985년 8월 10일자 조선일보와의 대담에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부처님의 도(道)에 도달하기 위해선 둘이 손 잡는 게 좋다.”라면서 “학(學)이 깊으면 도가 되고, 도(道)가 깊으면 다 한곳에서 만나게 된다,”라고 답했다.
1986년 5월 2일, 수덕사에서 제자들에게 “이제 가려고 하니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하면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것을 당부하고 원적에 들었다. 세수 87세, 법랍 74년.
수덕사를 중창하는 데 주력했으며, 선농일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선(禪)과 농사(農事)를 일치시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후학들은 가르침을 이어받아 덕숭총림 수덕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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