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소조불 |
|---|---|
| 한자 | 塑造佛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소불, 니상 |
| 세부장르 | 기타 |
나무 등으로 형상의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삼베와 같은 천이 섞인 진흙을 빚어 만든 불상
소조불은 점토를 이용하여 계속 붙여 나가면서 일정한 형태를 만든 불상으로, 소불(塑佛) 또는 니상(泥像)이라고도 한다. 제작 기법은 그늘에 말리는 건조식과 불에 굽는 테라코타(terra cotta) 기법으로 구분된다. 소조불은 삼국시대부터 제작되었지만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내구성이 약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수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구성이 약해 보존이 어려워 오래된 작품은 적은 편이다.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고구려·백제·신라에서 제작된 소조불이 남아 있는데, 고구려 원오리사지와 부여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소조불이 유명하다.
인도 고대 초기 소조불상은 주로 간다라 지역에서 조성되었다. 간다라에서는 초기에는 편암을 이용한 석불상이 주로 조성되었지만 불상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3세기경부터는 소조불이 유행하였다. 간다라 사원지에는 소조불이 독립적으로 불감(佛龕)에 모셔지기도 하지만 탑 표면에 부착된 형태로 많이 제작되었다. 현재 파키스탄 탁실라의 조울리안(Jaulian) 사원지 불탑 표면에는 소조불이 부착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흙으로 불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신라의 승려 양지(良志)는 소조불을 잘 만들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석장사(錫杖寺)에 주석했고 경주 영묘사 소조장륙삼존상을 조성했는데, 서라벌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옮기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전한다. 현재 경주 사천왕사 절터에서 출토된 사천왕상과 신장상은 양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조불이 유행한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17세기에는 큰 크기의 불상이 소조불로 제작되었는데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신불상(1626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삼존상(1633년),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삼세불상(1641년) 등이 대표적이다. 17세기에는 불상뿐만 아니라 사천왕상 대부분이 소조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 집필자 : 유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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