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낙양가람기 |
|---|---|
| 한자 | 洛陽伽藍記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양현지, 불교사서 |
6세기 중엽에 양현지가 북위의 이전 수도 낙양의 모습을 기록한 역사서
양현지(楊衒之, ?~?)가 493년부터 534년까지 약 40년간 북위(北魏)의 수도였던 낙양의 상황에 대해 주요 사찰을 중심으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북위는 한족이 아닌 선비족이 평성(平城)을 중심으로 중국의 화북(華北) 지방을 통일한 나라로, 황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심취하였다. 낙양은 493년에 북위의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으로 옮기고, 이후 534년에 업(鄴)으로 다시 천도할 때까지 불교문화가 만개한 북위의 문화·경제·정치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당시 낙양에만 사찰이 1,367개 있었으며, 평성의 윈강석굴(雲崗石窟)과 낙양의 룽먼석굴(龍門石窟)도 이때를 전후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서문을 포함해 모두 5권으로 이루어진다. 편찬자 양현지는 서문에서 547년에 낙양을 다시 방문하고, 화려하게 번성했던 옛 수도 낙양이 업으로 천도한 이후 폐허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예전의 영화를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고자 이 글을 짓는다고 밝힌다. 본문의 내용은 낙양성 안쪽부터 낙양성의 동쪽·남쪽·서쪽·북쪽의 순으로 구분해 대표적인 사찰을 소개한다. 사찰의 명칭, 사찰을 건립한 사람, 사찰의 위치와 주변의 풍경, 사찰에 대한 설명과 관련 인물 및 역사적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먼저 제1권에서는 낙양성 안의 영녕사(永寧寺), 건중사(建中寺) 등 사찰 십여 곳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영녕사는 독실한 불교도인 호태후(胡太后)가 건립한 사찰로, 금으로 장식한 호사스러운 90장(약 270미터) 높이의 9층 목탑과 궁전같이 화려한 법당과 금·진주·옥 등으로 꾸며진 불상, 천여 칸의 승방과 누관, 아름다운 뜰 등이 도솔천의 궁전도 이곳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2권에서는 낙양성 동쪽의 용화사(龍華寺)·경녕사(景寧寺) 등 열세 사찰, 제3권에서는 성 남쪽에 있는 경명사(景明寺)·대통사(大通寺) 등 일곱 사찰, 제4권에서는 백마사(白馬寺)·추선사(追先寺) 등 낙양성 서쪽의 열 사찰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제5권에서는 낙양성 북쪽의 세 사찰과 성 밖의 여러 절을 소개한다.
한편 이 책에는 낙양의 다채로운 상황이 나타나 있다. 불상을 수레에 싣고 성의 안팎을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공을 드릴 수 있도록 한 행상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행상에서 칼을 삼키거나 불을 토하는 서역 마술과 서커스를 펼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드는 모습 등도 펼쳐진다. 대진국(大秦國: 동로마제국)을 비롯해 서역의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승려들이 3천여 명이나 영명사(永明寺)에 머물며 경전을 번역하고 풍속을 교류한 내용과 덕이 높은 비구니의 일화도 보인다. 황실과 제후 등 주로 지배 계층이 주도하는 불사를 가축을 도살하는 어느 하층민이 주도한 일화도 눈에 띈다. 그 하층민은 어느 날 돼지를 도축하려다 돼지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자신이 살던 집을 바쳐 귀각사(歸覺寺)를 건립하고 가족이 모두 출가했다. 이 밖에도 당시 낙양의 분위기와 모습이 한눈에 그려지듯 잘 묘사된 일화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사협(賈思勰)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더불어 북위의 삼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또한 5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북위의 시대 상황과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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