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악 |
|---|---|
| 한자 | 善惡 |
| 산스크리트어 | kuśalākuśal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십선, 십악, 선업, 악업, 과보 |
착한 마음과 상응하는 일체 사상과 행위인 선과, 도리에 어긋나고 남과 나를 해치는 나쁜 마음과 그로 인한 행위인 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선악은 선과 악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선(善)은 현재세와 미래세 중에서 자신과 남에게 이익을 주는 청정한 법[白淨法]이며, 착한 마음(선심)과 상응하는 일체 사상과 행위를 가리킨다. 악(惡)은 선(善)에 상대되는 말이며, 불선(不善)과 같은 뜻이다. 도리에 어긋나고 법을 등지며, 자신과 남을 어기고 손해를 끼치며, 탐욕과 성냄 등의 번뇌와 상응하고 능히 성스러운 도를 가로막고 해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柰耶)』 권14에서는, 부처님이 모든 비구에게 만약 스스로 업을 짓는 데에는 반드시 밖의 지·수·화·풍 사대(四大)의 곳에서 과보가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의 온(蘊)·계(界)·처(處) 가운데서 선악의 업의 과보가 성숙한다고 설하였다. 이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바깥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또 『광찬경(光讚經)』 권9에서는, 참다운 진리[眞諦]를 성취하려고 하는 데에는 선악도 없고 모든 번뇌도 없으며 성냄과 원한도 없다고 하여, 참된 진리는 선악을 초월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천태종에서는 인(人)·천(天)의 선(善), 이승(二乘)의 선, 소승 보살의 선, 통교(通敎) 삼승의 선, 별교(別敎) 보살의 선, 원교(圓敎) 보살의 선 등 여섯 가지 선악을 말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인·천의 선: 오계(五戒), 십선(十善) 등의 ‘일이 착함[事善]’을 가리킨다. 다만 인·천의 과보가 다하는 때를 인(因)하여 그대로 장차 지옥·아귀·축생의 세 가지 악도 가운데 떨어지기 때문에 또한 악(惡)이 된다. ② 이승의 선: 이승의 사람은 능히 삼계의 괴로움을 멀리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선’이라고 한다. 이승의 사람은 비록 능히 스스로를 제도할 수 있지만 다른 이를 제도하지는 못하므로 또한 악이 된다. ③ 소승 보살의 선: 소승의 보살은 자(慈)와 비(悲)를 함께 쌓아 구제하므로 선이 된다. 그러나 자신 가운데서 아직 번뇌를 끊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악이 된다. ④ 통교 삼승의 선: 삼승은 동일하게 번뇌를 끊기 때문에 선이 되지만, 아직 별교 중도의 이치를 보지 못하고 무명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한 악이 된다. ⑤ 별교 보살의 선: 별교 보살은 능히 중도의 이치를 보기 때문에 선이 된다. 다만 보는 바의 중도가 격리되어 융통하지 못하는 중도이므로, 원교의 원융한 중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 행하는 바가 방편을 띠로 두르고 있어 이치에 합하지 못하니 이 또한 악이 된다. ⑥ 원교 보살의 선: 원교 보살이 보는 바의 원만하고 미묘한 이치는 본디 지극한 선이 되나 따름[順]과 등짐[背], 도달함[達]과 집착[著] 등의 두 가지 뜻을 말미암아 말한다면 또한 악이 된다. 따름과 등짐은 실상의 원만한 이치를 따름이 선이 되고 그것을 등지니 악이 된다. 도달함과 집착은 원만한 이치에 도달함이 선이 되고 원만한 이치에서 집착을 일으키니 악이 된다는 것이다.
천태종의 이러한 여섯 가지 선악은 교판적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은 사람, 하늘, 성문과 연각, 보살, 부처님 등의 오승(五乘)에 나아가 선악의 이름을 해석하였다.
· 집필자 : 박서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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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즐긴다는 것은 비록 탐욕과 성냄 등 온갖 번뇌가 모두 치성하더라도 어리석음의 편중으로 선악의 인과의 수승하고 하열한 일을 환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간에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나타내서 모든 중생들을 이익 되고 안락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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