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쿠시나가라 |
|---|---|
| 영문 | Kushnagar |
| 산스크리트어 | Kuśinagara, Kuśinagarī |
| 팔리어 | Kusinārā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4대성지, 열반, 사라쌍수 |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
석가모니부처님이 두 그루의 살라나무[沙羅雙樹]가 있는 자리에서 열반에 드신 장소로, 룸비니·부다가야·녹야원과 함께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인도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 쿠시나가르 지구 고라크푸르(Gorakhpur) 동쪽에 위치한 카시아(Kasia) 마을에 여러 유적이 흩어져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고고학자들이 해당 지역을 발굴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쿠시나가라는 보통 ‘쿠샤(kuśa) 풀이 있는 도시’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한역 불전에서는 구시나게라(拘尸那揭羅), 구시나갈라(拘尸那竭羅), 구시나갈(拘尸那竭), 구시나라(拘尸那羅), 구이나갈(拘夷那竭), 구시(拘尸, 究施) 등으로 음역한다. 각성(角城), 모성(茅城), 초성(草城)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남전(南傳) 및 북전(北傳) 열반경(涅槃經)류 경전들은 열반 전후의 상황과 열반 장소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데, 바이샬리(Ⓢ Vaiśāli, Ⓟ Vesāli)에 머물던 부처님은 제자 아난다(阿難陀, Ānanda)와의 대화 이후 다소 외딴 지역이자 말라(末羅, Malla)족이 거주하던 쿠시나가라로 향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구법승 법현(法顯, 337~422)과 현장(玄奘, 602~664)도 작은 규모의 마을에 대한 기록을 전한다. 또한 전승에 따르면 부처님의 입멸과 다비(茶毘) 후 불사리(佛舍利) 분배를 두고 말라족을 비롯한 여러 왕국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는 인도 산치(Sānchī) 대탑의 부조를 통해 표현되었다.
1861~1862년에 알렉산더 커닝엄(Alexander Cunningham, 1814~1893)이 처음으로 이곳이 쿠시나가라임을 밝혔으며, 15년 후 그의 조수 칼레일(A.C.L. Carlleyle, 1831~1897)이 발굴을 시작하여 중앙 대스투파(大stūpa)를 비롯한 일련의 유적들과 5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열반상을 발견하였다. 현재 유적 중앙에 재건된 대열반당(大涅槃堂)에는 이 열반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객이 방문하고 있다.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법을 전한 장소로서 불교도들에게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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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정수 삼매(正受三昧)에 들어가서 천안으로 모든 세계를 관찰하다가 쿠시나가라성(拘尸那竭城) 희련선하의 물가 역사생지 견고림의 쌍수 사이 천관탑 주변에서 세존을 화장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불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서 비참히 여겨 기뻐하지 아니하며 다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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