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부다가야 |
|---|---|
| 영문 | Bodh Gaya |
| 산스크리트어 | Buddhagayā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4대성지, 우루벨라, 금강좌, 보리수, 마하보디 불당 |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곳
석가모니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여 마왕 파순(波旬, Pāpīyas)을 조복(調伏)하고 깨달음을 성취한 곳으로, 룸비니·녹야원·쿠시나가라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북인도 비하르(Bihar)주에 위치한 보드가야(Bodh Gaya)이며, 당시 마가다 (摩伽陀, Magadha)왕국의 고대 수도인 왕사성(王舍城, Ⓢ Rājagṛha, Ⓟ Rājagaha) 근처 니란자나강(尼連禅河, Nairañjana)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에는 이 지역을 우루빌바(Ⓢ Uruvilvā, Ⓟ Uruveḷā)로 불렀고, 7~9세기경에는 명문(銘文)과 구법승의 기록을 통해 마하보디(Mahābo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보드가야라는 명칭은 힌두교도들이 원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이곳을 힌두교 성지로 삼아 정비하면서 힌두교 신 ‘비슈누의 화신 붓다의 가야’라고 이해하여 부르게 된 이름으로, 불타가야(佛陀伽耶) 등의 음역어가 아울러 사용되었으며, ‘부다가야’로도 부른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본래의 불교적 의미가 알려지면서 인도 국외 불교도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일곱 주 동안 머물렀던 장소들은 모두 성지로 여겨지며,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Aśoka, 재위 기원전 273~232년경)가 승려 우파굽타(Upagupta)와 함께 보드가야를 방문하여 이곳에 스투파(stūpa)를 세웠다고 전한다. 현장(玄奘, 602~664)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도 이곳에 있는 마하보리 승가람(摩訶菩提僧伽藍, Mahābodhi-saṅghārāma)을 언급하고 있다. 현재는 19세기 말 버마(미얀마) 불교도들이 새로이 복원하여 건립한 마하보디 불당과 더불어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여겨지는 금강좌(金剛座)와 보리수가 남아 있다. 특히 마하보디 사원은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동인도 벽돌 건축의 전통을 계승하는 건축물이라는 면에서 불교미술사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닌다.
중세기에는 불교가 비불교도 왕들에게 박해를 당했으나 이 유적지는 대부분의 불교 기념물이 유래한 팔라(Pāla, 8~12세기경) 왕조 시대에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았다. 사원과 그 주변은 13세기에 시작된 무슬림의 침략 이후 방치되었는데, 18세기부터는 시바(Śaiva: 힌두교의 시바신을 숭배하는 종교의 유파)파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880년 벵골의 영국 총독이 유적지를 복원하도록 지시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스리랑카 승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ārika Dharmapāla, 1864~1933)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주요 불교도 협회와 함께 부다가야를 불교 순례지로 복원하려는 목표로 마하보디 협회(Maha Bodhi Society)를 설립하면서 관련 활동이 활발해졌다. 1949년 인도 독립 이후 보드가야 사원법이 통과되면서 불교도와 힌두교도 각 4인으로 구성된 ‘보드가야 사원 관리위원회(BTMC, The Bodhgaya Temple Management Committee)’가 사원과 그 부지를 감독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국어로 작성한 명문(銘文)을 남겼는데, 이는 인도와 동아시아의 불교 교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부처님의 항마성도(降魔成道)를 상징하는 장소로서 불교도들에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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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위성의 옛 수도를 출발하여 불타가야의 옛 거리를 등지고 총령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 사막의 험한 길을 건너 정관 19년(645) 춘정월(春正月), 경읍(京邑: 장안)에 돌아와 낙양에서 천자를 배알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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