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견성성불 |
|---|---|
| 한자 | 見性成佛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
선종에서 견성하여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인 성불을 성취하는 것
선종의 종지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등으로 표현한다. ‘문자’와 ‘교’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단을 말한 것이고, ‘직지’는 이론적인 모색이나 추론의 결과,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대상에 직접 부딪쳐 깨닫는 경험을 말한 것이며, ‘견성’은 자기의 본성이 원만한 줄을 자각하는 경험이다. 이에 견성성불에서 견성과 성불은 동일한 뜻이다. 즉 견성과 성불은 각각 시간적인 전후의 관계가 아니고 공간적인 좌우나 상하의 관계도 아니다. 견성이 곧 그대로 성불인 것이다.
견성성불이라는 용어는 『단경(壇經)』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경』에 따르면 성불은 바로 견성을 계기로 하여 성취되는데, 견성이기 때문에 성불하는 것이 아니라 견성 그것이 바로 성불이라는 구조로 활용되고 있다. 견성에서 ‘견’의 표면적 의미는 ‘본다, 꿰뚫어 본다, 파악한다’이지만, 청정한 마음이 본래부터 온전하게 완성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현현한다, 개현한다’는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견성성불이란 각자 자기의 마음은 본래부터 온전하게 완성되어 있어서 부처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번뇌가 없는 자성이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돈오(頓悟)하는 것을 가리킨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는 “(문) 견성성불은 그 뜻이 어떤 것입니까? (답) 청정한 자성은 본래부터 고요하여 동요가 없으니, 있음과 없음·청정함과 더러움·길고 짧음·취하고 버림 등의 상대적인 관념을 벗어나 있어서, 그 본체가 스스로 걸림이 없이 초연하다. 이것이 밝게 보는 것이니, 곧 견성이라고 한다. 성(性)은 곧 불이고 불이 곧 성이기 때문에 견성성불이라고 한다. (문) 자성이 이미 청정하여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 있다면 어째서 다시 보는 작용(見)이 있는 것입니까? (답) 보아도 보이는 대상은 없다. (문) 이미 보이는 대상이 없다면 어째서 다시 보는 작용이 있는 것입니까? (답) 보는 작용도 없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이 깨달음을 현성(現成)하는 수행의 형식이라면, 직지인심과 견성성불은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의 작용이 깨달음의 결과로 성취되는 내용이다.
본래 선(禪)의 근본은 자각의 체험에 의한 견성성불이기 때문에, 견성성불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명(究明)하여 망념과 망상의 자아를 여의고 애초에 구비하고 있는 진실한 불성을 깨달아 생사를 초월한 심경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 집필자 : 김호귀
용례
-
조사(福師)는 다만 심인(心印)을 전했을 뿐이고, 지공(誌公)은 대승(大乘)이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하는 것을 찬양한 것이다.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