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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왕도

한글현왕도
한자現王圖
유형문화예술
키워드염라왕
세부장르회화
시대조선
염라왕과 권속들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
현왕도(現王圖)란 염라천자(閻羅天子)의 미래불인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주존으로 한 불화이며, 망자 사후 3일에 설행되는 현왕재(現王齋)를 위한 그림이다. 현왕도는 사후 망자의 심판을 맡은 10명의 대왕 가운데 다섯 번째인 염라왕과 판관, 녹사, 사자, 동자, 옥졸 등 심판을 돕는 권속들을 그린 불화다. 현왕이란 명칭은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에서 유래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염라천자는 미래에 성불하여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라는 이름의 부처가 된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보현왕여래’를 줄여서 ‘현왕’이라 불렀다. 조선 후기 의례집에서 현왕은 성왕(聖王)으로 혼용되기도 했으며, 사후 3일에 지내는 현왕재의 주존으로 모셔졌다. 이 의례에서 사용하는 그림이 현왕도인데 이 불화는 특이하게 명부전에 시왕도가 봉안되어 있는 경우에도 사찰의 중심 전각에 별도로 봉안했다. 그 이유는 염라왕이 명부의 심판자인 열 명의 대왕 가운데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고, ‘현왕재’와 ‘현왕청’이라는 독립된 의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왕청’에서 염라왕은 보현왕여래로 불리고, 이 의례의 그림인 현왕도에서도 ‘현왕’이라는 명칭을 쓰지만, 정작 현왕도에서 현왕은 여래의 모습이 아니라 전통적인 염라왕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이는 현왕재가 독자적인 신앙으로 오랫동안에 걸쳐 전승된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예수재에서 분화되었기 때문에 현왕도를 그릴 때도 도상적 특징을 알 수 없는 보현왕여래보다 익숙한 염라왕의 모습으로 그렸던 것으로 보고 있다. 현왕도의 주존인 현왕은 대부분 화면 중앙에 있으며,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제왕형으로 묘사된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공덕으로 망자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설화가 널리 퍼지면서, 시왕도에서 염라왕이 관모 위에 『금강경』을 얹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일부 현왕도에서도 현왕이 이런 모습으로 그려지며, 나아가 현왕도의 화면에 『금강경』이나 『금강경』의 문구가 삽입되기도 한다. 현왕도의 현왕 좌우에는 협시인 전륜성왕과 대륜성왕이 원유관을 쓰고 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한다. 그리고 주위에는 사모를 쓴 판관, 문서를 들고 있거나 죄상을 기록하고 있는 녹사(錄事), 망자의 선악이 적힌 두루마리를 든 사자(使者), 공양물이나 의장물을 든 천인과 동자가 선택적으로 그려진다. 현재 전하는 조선 후기 현왕도 중 가장 이른 사례는 1718년(숙종 44) 경주 기림사에서 제작한 이며, 이 작품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약 75여 점의 현왕도가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왕도는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회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불화 가운데 하나이다.
· 집필자 : 김현중(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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