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석천도

한글제석천도
한자帝釋天圖
유형문화예술
세부장르회화
시대고려-조선
신들의 제왕인 제석천을 주존으로 그린 불화
욕계의 두 번째 하늘인 도리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신들의 제왕인 제석천과 그의 권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은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리그베다』나 『마하바라따』에서 악신(惡神)인 아수라와 갈등하는 선신(善神)으로 묘사된다. 또한 제석천은 전쟁신 또는 신들의 왕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제석천은 불교에도 수용되어 붓다의 탄생, 출가, 열반 등 붓다 일생의 중요 장면에서 범천과 함께 주요 호법신으로 나타난다. 인도에서 제석천은 주로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금강저를 들고 있는 군주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8세기 무렵 중국에서 여성형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군주의 모습을 한 제석천이 중국에서 여성형으로 변화하게 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성당(盛唐) 시기 기록에 의하면 제공(齊公)이 아낀 기녀를 모델로 한 보응사(寶應寺)의 제석천·범천 벽화가 유명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는 8세기 중반 불경에 의거하지 않고, 실재하는 여성을 모델로 하여 제석천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귀부인의 모습을 한 제석천의 모습은 14세기 초에 제작된 일본 쇼타쿠인(聖澤院) 소장 나 14세기 중반에 제작된 일본 세이카도분코 미술관(靜嘉堂文庫美術館) 소장 등 고려불화에서도 확인된다. 고려시대 제석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919년(고려 태조 2)에 수도를 철원에서 송악(개성)으로 옮기면서 궁궐, 관청과 함께 건립된 10사(寺) 가운데 하나인 내제석원(內帝釋院)과 924년(고려 태조 7)에 창건된 외제석원은 고려 말까지 왕의 탄신일이나 전염병, 전쟁이 발생했을 때 왕이 직접 고려 왕실의 안녕과 국난 타개를 위한 기도를 했던 사찰이었다. 조선시대 제석신앙은 고려시대와 달리 사찰의 안녕과 개인의 재앙 소멸·수복강녕을 기원하는 기복적인 성격으로 변화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제석천이 손에 들고 있는 부채의 모습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석천도의 제석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궁궐인 선견성(善見城)이 표현된 부채를 들고 있으나, 18세기 무렵부터 제석천은 부채 대신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집필자 : 김현중(현주)

관련자료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