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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불도

한글삼신불도
한자三身佛圖
유형문화예술
세부장르회화
시대조선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과 권속을 그린 불화
삼신불도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과 권속들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다. 인도의 초기불교에서 부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는 교리적 쟁점이었다. 역사적 실재로 존재했던 인간 붓다와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존재로서의 붓다에 대한 이해가 갈리면서 인간 붓다는 구체적 현실의 몸을 가진 색신(色身)으로 보고, 초월적 붓다는 보편적 영원한 몸을 가진 법신(法身)으로 여기는 이신설(二身說)이 등장했다. 이후 대승불교에서는 법신과 색신 외에 두 가지 양면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보신(報身)의 개념이 추가되어 붓다의 몸에 대한 관념은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설(三身說)로 발전했다. 삼신불사상은 중국 천태종에서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불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이 부여되어 삼신이 나누어지면 셋이 되고, 셋이면서 하나인 삼신일체 사상으로 정형화되었다. 이러한 천태종의 삼신불 사상은 후에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는 화엄종에 수용되어 화엄불신관으로 정착되었다. 조선 전기 삼신불의 도상은 1499(연산군 5)~1505년(연산군 11)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쥬린지(十輪寺) 소장 의 사례와 같이 삼세불과 혼용되어 표현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 18세기 무렵 화엄교학이 성행함에 따라 『화엄경과 관련 있는 불화인 삼신불도가 다수 제작되었는데, 주로 비로자나불과 관련 있는 전각인 대광명전·대적광전·비로전 등에 봉안되었다. 삼신불도는 중앙에 법신인 비로자나불이 위치하고, 비로자나불의 왼쪽, 화면의 향우측에는 보신인 노사나불, 비로자나불의 오른쪽, 화면의 향좌측에는 화신인 석가불이 배치된다. 봉안 공간에 따라 삼신불을 세 폭에 나누어 그리기도 하고, 한 폭에 삼신불을 모두 표현한 작품도 있다. 1759년(영조 35)에 제작된 통도사 대광명전 를 통해 도상과 화면 구성을 보면 비로자나불은 여래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 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을 맺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주위엔 보살들과 십대제자, 팔금강, 용왕, 용녀가 있다. 노사나불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을 영락 장식으로 장엄한 보살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양손은 어깨 위로 들고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잡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을 맺고 있다. 노사나불의 주위엔 사천왕 가운데 2위와 보살, 제자, 타방불, 건달바와 가루라가 있다. 마지막으로 석가불은 여래의 형상에 오른손을 땅으로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고 있으며, 주위에는 팔부중 가운데 아수라와 야차만 다를 뿐 나머지 권속은 노사나불과 같다. 한편 삼신불의 도상은 괘불도에서 조금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1673년(헌종 14)에 제작된 이나 1838년(헌종 4)에 제작된 처럼 노사나불을 보살형이 아닌 여래의 형상으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 집필자 : 김현중(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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