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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불도

한글삼세불도
한자三世佛圖
유형문화예술
세부장르회화
시대조선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불과 권속을 그린 불화
삼세불도는 석가불·아미타불·약사불과 권속들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다. ‘삼세불(三世佛)’은 초기 불교에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적 개념을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나, 신앙의 유행에 따라 성격과 구성이 변화하였다. 삼세불이 아미타불‧석가불‧약사불로 구성된 것은 중국 당대(唐代)부터다. 이후 원대(元代)에는 관청에서 조성하는 불상과 불화 제작의 기준을 기록한 『원대화소기(元代畵塑記)』에 삼세불상을 사찰의 전각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당시 삼세불상이 활발하게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명·청대에는 원(元)의 영향을 받아서 전국적으로 삼세불상이 조성되었다. 한국의 경우 아미타불‧석가불‧약사불을 그린 삼세불도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품이 남아 있지만, 1466년에 조성된 의 복장 발원문을 통해 조선 전기에도 삼세불상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그림으로 그려질 때는 경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석가불‧아미타불‧약사불로 구성된 삼세불은 각각의 부처가 개별적인 경전을 통해 신앙을 가지고 있고, 단일한 경전에서 삼세불이 함께 언급되는 사례는 없다. 따라서 삼세불신앙은 하나의 경전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신앙이 결합하여 종합적인 성격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의식집에 수록된 「별축상작법절차(別祝上作法節次)」라는 의례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왕, 약사불은 왕비, 석가불은 세자를 축원하는 부처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왕실의 구성원들을 축원하는 의례는 삼세불신앙의 바탕이 되는 단일한 경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 후기 삼세불도의 제작이 왕실 구성원을 축원하는 의례와 관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삼세불도는 1573년(선조 6)에 그려진 일본 곤가이코묘지(金戒光明寺) 소장 가 가장 이른 사례이며, 현재 전하는 작품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의 불화들이다. 삼세불도의 도상은 석가불을 주존으로 하는 영산회상도,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아미타극락회상도, 약사불을 주존으로 하는 약사불회상도가 결합한 모습이다. 삼세불 가운데 석가불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단전 앞에 놓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석가불의 우측인 화면의 향좌측에 위치하는데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은 단전 앞으로 내린 채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구품인(九品印)을 맺고 있다. 약사불은 석가불의 좌측, 화면의 향우측에 위치하는데 약사불의 지물인 약그릇을 들고 있다. 석가불의 좌우에는 협시보살인 문수, 보현보살이 배치되며 주위에 십대제자가 위치한다. 그리고 사천왕과 팔부중이 그려지는 사례도 있다.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협시보살인 관세음, 대세지보살과 함께 팔대보살이 그려지고, 약사불의 좌우에는 협시보살인 일광, 월광보살과 함께 약사십이신장이 그려진다.
· 집필자 : 김현중(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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