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공견 |
|---|---|
| 한자 | 空見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공성, 무자성, 연기, 중도, 희론, 중관학파 |
공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견해
공성은 희론이라는 분별적 사고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주지만 공성을 중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공의 의미를 없다[無]로 이해하거나, 반대로 공을 비어 있음의 있음[有]으로 집착하는 공견이 생겨난다. 이러한 공견은 수행의 인과와 계율을 무너뜨리는 사견이다.
중관학자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가 정의하는 공성(空性, śūnyatā) 혹은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지시하는 언어표현이다. 하지만 ‘공성’은 언어적 표현으로서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공성의 의미를 ‘없다[無]’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론』 「관사제품(觀四諦品)」에는 공성을 없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한 이들을 위한 논의가 담겨 있다. 「관사제품」에 따르면 공성의 의미를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 논적의 논리에 따라 없다는 의미의 ‘공’이라는 법이 있다면 사성제(四聖諦, catvāri-āryasatyāni)가 존재하지 않고, 이에 따라 예류(豫流)·일래(一來)·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에 이르는 사향사과(四向四果, aṣṭau puruṣa-pudgalāḥ)마저 존재하지 않게 되며, 결국 승가(僧伽, saṃgha)와 정법, 즉 삼보(三寶, ratna-traya)를 파괴하는 결과에 봉착한다. 따라서 나가르주나는 ‘공의 의미’를 없다[無]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공성의 목적은 모든 현상과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자각하도록 안내하는 이정표로서 희론(戲論)의 적멸로 우리를 이끈다. 이는 연기의 가르침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우리에게 존재[有]와 비존재[無]의 양극단을 넘어 중도적 가치 선택을 유도한다. 『중론』 「관사제품」 제18게에서 “우리는 연기를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적인 언어표현[假名]이다; 그것(공성)은 실로 중도이다.”라고 한 것은 공성이 연기와 중도 사이를 어떻게 매개하면서 서로 함축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공성은 희론이라는 분별적 사고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주지만 공성을 중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공의 의미를 없다[無]로 이해하는 잘못된 견해로서 공견(空見)이 생겨난다. 반대로 공을 비어 있음의 있음[有]으로 집착하는 공견도 생겨난다. 이러한 공견은 수행의 인과와 계율을 무너뜨리는 사견이다. 공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정견을 파괴하고 사견을 내는데,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데 영향을 주게 된다. 중관학자들은 공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낳는 부류를 악견이나 사견, 공견, 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견해라고 표현한다.
· 집필자 : 김현구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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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수보리가 (공에 대한 설법을) 듣고 이해하고 나서 말했다. “저는 의심하는 바 없으나, 미래에 삼승을 구하는 사람을 위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붓다가 설한 공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듣고 나서 죄가 중하고 지혜가 둔하기 때문에 공상을 취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더럽고 누가 깨끗한가? 범부와 악인은 무엇 때문에 더럽다고 하는가? 출가자와 득도자는 무엇 때문에 깨끗하다고 하는가?’ 이 사람이 붓다의 깊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떤 일에 대해서도 이 공에 취착하여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계율 등을 지켜야 하는가?’ 이 인연 때문에 사견을 일으키고 정견을 파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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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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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āgārjuna’s Middle Way: the Mūlamadhyamakakārik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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