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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현의 시조

한글조종현의 시조
유형문화예술
키워드시조, 유식 사상, 공 사상
세부장르문학
시대근현대
관련장소선암사
관련인물조종현
철운 조종현의 시조 문학
조종현(趙宗玄, 1906~1989)은 선암사 출신 승려 시조 작가로, 1930년 등단한 이후 여러 지면에 불교적 세계관과 역사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이를 모아 『자정의 지구』(현대문학사, 1969), 『의상대 해돋이』(한진출판사, 1978), 『거 누가 날 찾아』(지하철문고사, 1986), 『나그네 길』(한국문학사, 1988) 등의 시조집을 출판하였다. 조종현의 본명은 용제(龍濟), 자는 대순(大順), 아호는 벽로(碧路), 법명은 종현(宗玄, 鍾泫), 법호는 철운(鐵雲)이다. 필명으로 혈해(血海), 탄향(灘鄕, 彈響), 종현(鍾峴), 여시산방(如是山房) 등이 있다. 조종현은 불교 강원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교학을 깊이 연찬하였다. 출가 사찰인 선운사의 경운 원기 문하에서 사집(四集) 과정을 이수하였고, 1926년에 범어사 진응(震應)에게 사교과(四敎科)를 졸업하였다. 1928년 동화사 강원을 거쳐 개운사 대원암 강원에서 석전 박한영에게 대교과(大敎科)를 이수하였다. 이후 1932년 개운사 대원암의 중앙불교연구원(강주 박한영) 유식과(唯識科)를 졸업하였다. 조종현의 사상과 문학에 영향을 준 인물을 살펴보면, 교학 연찬의 현장에서는 경운 원기와 석전 박한영, 불교청년단체의 혁신운동 과정에서는 만해 한용운, 그리고 시조 작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노산 이은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9년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등에 동요 백여 편을 발표하였고, 1930년 『동아일보』에 시조 「그리운 정」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0년 초 『불교』지는 발행인인 만해의 영향으로 중앙불전 출신을 비롯한 다수의 불교시 작가가 등단하였는데, 조종현은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동요극 「꽃피는 동산」(83호, 1931.5)도 여기에 수록되었다. 이 외에 불교 잡지 『회광』, 『불청운동』, 『선원』 등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시조를 발표하였다. 조종현의 불교와 시문학관은 시조집 『의상대 해돋이』 말미의 「끝에 적음」에 잘 드러나 있다. “불심(佛心)이 아니면 시심(詩心)을 가질 수 없고, 시심이 아니면 불심에 접할 수 없다. 시심 불심은 그저 동심(童心)이어야 한다.”라는 구절에서 문학은 자신이 깨달은 불교적 진리를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어법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조종현의 시조는 불교의 유식 사상‧공 사상을 기저로 하여 삶에 대한 깊은 관조를 표현하였고, 서민적 삶의 정경과 가족의 애틋한 정을 우리말의 어감을 잘 살려 표현하였다. 23수의 연작시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등 남북분단의 현실과 애틋한 조국애를 표출한 작품도 문학적 특색을 잘 보여 준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 송광사에서는 삼일암(三日庵)이 선방이고 큰절에서 강원을 했다. 선암사(仙岩寺)에서는 칠전(七殿)이 선방이고 서전(西殿)이 강원이었다. 선암사는 유명한 강사 도량이다. 경운스님 밑에 강맥이 이어져 7대로 이어졌는데 경운스님이 5대 강사이고 그의 제자 장기림스님이 유명했다. 강사이고 문장가로서 그 당시 우리 진진응스님 다음가는 대강사라고 했었는데 아깝게도 일찍 죽었다. 그 밑에 제자 조종현(趙宗玄)스님이 났는데 이로써 七대 강사가 된다. 이런데서 선암사는 선보다 강을 많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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