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원곡 |
|---|---|
| 한자 | 禪園曲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학명 계종, 백학명 |
| 세부장르 | 문학 |
| 시대 | 근현대 |
| 연도 | 1920년대 |
| 관련장소 | 내장사 |
| 관련인물 | 학명 계종(鶴鳴啓宗), 백학명(白鶴鳴) |
학명 선사가 내장사 선원에서 반선반농 운동을 전개하며 그 지향을 노래한 불교 가사
학명 계종(鶴鳴啓宗, 1867~1929)이 1920년대 내장사 선원에서 반선반농 운동을 전개하면서 지어 부른 166구의 불교가사이다.
학명은 근대 불교계에서 선 수행 풍토의 쇄신과 새로운 선 수행 방식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 고승이다. 1920년대 초 근대 고승들이 전통 불교를 수호하고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설립한 선학원(禪學院)에서는 주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를 결성하였다. 여기에 오성월, 송만공 등 여러 대덕과 함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공제회 사무를 토의하는 의사부(議事部) 평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선풍의 진작에 힘을 쏟았다.
이와 함께 학명은 1923년에 내장사를 중건하고 내장선원을 개설하여 선 수행의 혁신을 직접 구상하고 실천하였다. 선원의 목표는 ‘반선반농(半禪半農)’을 실천하는 것으로 하였고, 선회(禪會)의 주의(主義)는 ‘자선자수(自禪自修)’하며 ‘자력자식(自力自食)’하는 것으로 제시하였다. 하루 일과로 오전에는 학문을 오후에는 노동을, 야간에는 좌선을 하였다. 동안거는 좌선, 하안거는 학문과 노동을 위주로 하였고, 안거증은 3년 후에 수여하는 방침을 정하여 선원을 운영하였다.
학명은 반선반농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가사로 적극 표출하였고, 가사의 창작과 구연을 선원의 ‘규칙’의 하나로 포함하여 활용할 정도로 적극적인 문학 활동을 펼쳤다. 학명의 가사 7편 중 대표작인 「선원곡(禪園曲)」은 내장사의 반선반농 운동의 요체를 구시가의 표현 기법을 활용하여 전개한 작품이며, 노동과 이념의 조화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내용은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제1단락은 차별 없는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나누어지고, 청정한 우리 마음의 본바탕이 미혹에 가리어진 상황을 제시하였다. 제2단락은 사문유관(四門遊觀)과 출가에서 득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득도 이후에 중생을 위해 감로법(甘露法)을 펴는 석가의 일대기를 노래하였다. 제3단락은 석가의 가르침이 가섭의 염화미소를 통해 이심전심으로 전수되었음을 말하고, 33조사를 비롯한 여러 조사의 가르침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음을 말하였다. 그리고 각각의 조사마다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이 달랐음을 이야기하여, 조사마다의 권변(權變)은 절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제4단락은 자신이 행하는 반선반농 운동도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따른 권변의 모습임을 강조하였다. 선가(禪家)의 폐풍을 지적하며 노동과 함께하는 참선의 소중함을 노래하였다.
학명의 「선원곡」은 산중 불교에서 도시 불교로 변모하는 20세기 초의 시대적 전환을 담은 혁신의 노래로서 의의를 지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행 방법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말 노래의 다양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제시한 개성 있는 불교가사 작품이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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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황사(覺皇寺) 교당을 선원(禪院)으로 결정> 경성부 수송동 팔십이번지 각황포교당에 현 포교사 백학명 선사는 조선불교에 있어 선으로나 교로나 모다 일지(一指)를 굴(屈)하게 됨은 일반이 임지(稔知)하는 바인데 더욱이 본 교당에 이석(莅錫)하게 된 초지(初志)는 본 교당을 선원(禪院)으로 정하고 조선 내에 운수선납을 모집하야 안거를 하야 보랴는 희망이었음으로 ……중략…… 회주 백학명대선사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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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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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사 작가에 관한 一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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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의 가사 「선원곡」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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