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상량문 |
|---|---|
| 한자 | 上樑文. 上梁文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상량식, 축원문, 마룻대 |
| 세부장르 | 문학 |
건축에서 상량식을 행할 때 제작하는 축원문
누각, 정자, 서원, 강당, 재실, 사찰의 전각 등 건축물을 지을 때 상량의 단계에서 축원문으로 쓰고 낭송한 일정한 양식의 글이다.
상량(上樑)이란 집을 지을 때 기둥에 들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걸고서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때 행하는 의식을 상량식이라 하고, 이때 짓는 발원문(축원문)을 상량문이라 한다.
상량문의 문체적 특징은 명나라 서사증(徐師曾)이 지은 『문체명변(文體明辯)』(1570)에서 소개한 것이 조선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문체명변』 상량문 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소개하였다.
“상량문이란 공사(工師)가 들보를 올릴 때 하는 말이다. 세속에서 궁실을 지을 때면 반드시 길한 날을 받아서 상량을 한다. 이때 친지와 손님들이 요즘은 만두(饅頭)라고 부르는 면(麵)에 싼 음식을 다른 음식물과 함께 올리며 경사를 축하하고 장인들을 대접한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면을 들보에 던지면서 이 글을 외우며 축원한다. 그 글의 첫머리와 끝은 모두 변려문을 사용하고 중간에는 각각 3구로 된 시 여섯 수를 써서 사방과 상, 하방에 배당하니 이것은 대개 세속의 예인 듯하다.”
상량문은 대체로 서사, 본사, 육위송(六偉頌), 결사의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체는 산문체로 기술하면서도 운문처럼 정형화되어 있고 극도의 예술적 기교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산문 부분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으로 4자와 6자구를 일정하게 반복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또 절묘하게 대구를 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율시의 영향에 따라 평측을 사용하였다. 또한 과거 옛 문인들의 글에서 차용한 전고(典故)를 자주 사용하여 현란한 수사와 표현 기법이 사용되었다.
육위송은 동, 남, 서, 북, 상, 하의 방향에 따라 지은 여섯 수의 시를 말한다. 첫수의 경우 ‘아랑위 포량동(兒郞偉抛梁東)’을 첫 구로 사용한다. 줄여서 포량동, 양지동(梁之東), 혹은 동(東)으로만 표시하기도 한다. 이하 수에서는 ‘東’ 대신 다른 방위를 차례대로 제시한다. 건물과 제반 관련 사항을 축원하며 방향에 따라 시적으로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려 중엽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등이 지은 작품이 시초가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기원문 양식으로 매우 활발하게 제작되어 문인들의 문집에 독립적인 문체로 설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문집에 전하는 불교 건축물 상량문은 아직 그 전모가 파악되지 않았으나, 유몽인의 「가야산 팔만대장경전 상량문」, 정약용의 「대둔사 만일암 중수상량문」, 김정희의 「가야산 해인사 중건상량문」(1818) 등이 대표적이다.
불가의 상량문은 각 사찰의 자료가 방대하여 전체 분량이나 분포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불가 문집 가운데 ‘상량문’을 제목으로 한 글은 『청허당집』의 「내은적 청허당 상량문(內隱寂淸虛堂上樑文)」을 비롯하여 약 36권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 수로 보면 『가산고』 12편, 『다송문고』 16편, 『범해선사문집』 5편, 『역산집』 5편, 『임하록』 4편, 『인악집』 4편, 『일지암문집』 5편, 『충허대사유집』 6편, 『호은집』 10편 등이 있어 18~19세기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상량문을 쓴 호은 유기(好隱有璣. 1707~1785)는 상량문의 유래가 원‧명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당시에 중창 불사가 많아지면서 형식만 갖출 뿐 격조를 찾아볼 수 없는 상량문이 다수 창작되고 있는 기풍을 비판하며, 육위송을 제외한 상량문을 ‘양간록(樑間錄)’이라는 제목으로 짓기도 하였다.
· 집필자 : 김종진
용례
-
「내은적(內隱寂) 청허당(淸虛堂) 상량문(上樑文)」 암자를 세우며 길일(吉日)을 가려서 들보를 올리나니, 송골(松骨)을 찍어서 들보를 만들고, 벽운(碧雲)을 베어서 기와를 만들며, 청풍(淸風)을 끌어와 벽(壁)을 삼고, 명월(明月)을 걸어서 등불을 삼는다. ……중략……이 암자에 있어서는 이날이 특별하겠기에 글을 지어서 다음과 같이 찬조(贊助)하는 바이다.
더보기 +
관련기사
-
고려시대: 1308년 3월 묵서수덕사 대웅전은 1937년 해체·수리공사 중 묵서가 발견되어 1308년에 건립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정확한 기년을 가진 목조건축물 중 그 시기가 가장 올라가는 건축임이 확인되었다. 대웅전 묵서는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의 조사 일지 기록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다. 1937년에 작성된 『1937年 保存修理 工事』 보고서에는 21건의 묵서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6건이 고려시대 기록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은 대체로 1308~1309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목재 건축 부... -
조인정사조인정사(祖印精舍) 건물은 대웅전(大雄殿) 영역 하단(下段)의 무이당(無二堂), 범종각(梵鍾閣)과 법고각(法鼓閣)과 함께 일원을 구성하고 있는데, 법고각 뒤 편에 위치한다. 조인선원의 선방(禪房)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이당 건물과는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전면에는 〈수덕사(修德寺)〉 편액(扁額), 〈종무소〉 편액, 〈덕숭총림 수덕사 종무소(德崇叢林修德寺宗務所)〉 편액을 비롯하여 〈수덕사 신도회〉·〈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신도회〉·〈덕숭총림 수덕사 사회복지법인 수덕〉 등 현재 건물의 용도를 보여주는 여러 점의 편액이 걸려있... -
고려시대: 1308년 4월 24일 묵서이 기록은 수덕사 대웅전 화반 아래에 끼우는 부재의 상·하면(上·下面)에 적힌 묵서로, 고려시대 묵서 중 가장 내용이 길다. 이 묵서가 적힌 부재에 대해서, 스기야마 노부조(衫山信三, 1906~1997) 기록에는 ‘상량문 일호표(上梁文 一號表)’라는 주기와 함께 ‘화반(華盤) 밑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묵서의 내용은 "지대원년(至大元年) 4월 24일" 수덕사 조성에 참여한 대중의 이름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언급된 대동량(大棟梁) 효가(曉假)와 대지투(유)(大指偸(諭)) 중비(中批)는 4월 17일 입주(立柱) 묵서에...
더보기 +





